봄바람이 살랑이고,
벚꽃이 막 피기 시작한 캠퍼스 한가운데.
학교에서 가장 예쁜 벚꽃나무 아래에 있는 벤치에
이람이 앉아 있었다.
주변에 꽃 사진을 찍는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서준이 급히 걸어와 그녀 앞에 멈췄다.
서준은 조심스럽게 이람에게 말을 걸었다.
“서이람?”
이람은 놀란 눈으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학기 초, 현우를 피해다닐 때
몇 번 본 적 있는 현우의 친구였다.
“…어? 너, 현우 친구…”
“응 나 현우 친구 서준이야.
현우가… 일이 좀 생겨서 갑자기 본가에 가게 됐어.
오늘 너한테 못 올 것 같다고,
전해달라고 해서 대신 내가 온 거야.”
이람의 표정이 순식간에 걱정으로 변했다.
“무슨 일인데? 무슨 큰일 났어?”
“…현우 할머니가 갑자기 다리를 다치셨대.
지금 많이 붓고 걷기도 힘드시다 해서,
현우가 급하게 본가 양주로 가고 있는 중이야.”
이람은 작게 얘기했다.
“아… 그렇구나… 다치신 게 괜찮으셔야 할 텐데…”
이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괜히 두 손을 꼭 쥐었다.
걱정 반, 아쉬움 반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한 표정으로.
이람은,
‘양주… 나도 어렸을 때 잠깐 그 근처에 살았었는데…’
라고 생각했다.
다시 이람은 미소 지으려 애쓰며 서준에게 인사했다.
“전해줘서 고마워. 나 그럼 가볼게.”
“응, 조심히 가.”
이람의 어깨 위로 벚꽃 잎이 살짝 떨어졌다.
서준은 조용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휴대폰을 꺼내 현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잘 전했어. 걱정마.
이따 할머니 괜찮으신지 꼭 연락 줘.]
그리고 발길을 돌려 천천히 집으로 돌아갔다.
이람이 걱정스러운 표정과 아쉬움이 묻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걸음을 옮기던 그때,
누군가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서이람.”
익숙한 목소리.
고개를 들자, 최보미가 매서운 눈빛으로 서 있었다.
이람은 보미를 보고 몸이 오그라들었다.
보미는 이람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바로 물어봤다.
“솔직히 말해. 너, 현우랑 무슨 사이야?”
이람은 깜짝 놀라 두 눈이 동그래졌다.
“…어? 아니… 그냥… 친구야.”
이람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보미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근데 같은 친구인데,
왜 걔는 나랑은 얘기도 잘 안 하고,
왜 맨날 너한테만 가는 건데?
이상하잖아.”
이람은 우물쭈물 고개를 숙였다.
“그,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그때,
멀리서 누군가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야, 최보미. 너 뭐하냐?”
서준은 어디선가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듯,
급히 걸어와 보미 앞에 섰다.
보미는 눈살을 찌푸리며 서준을 보았다.
“뭐긴 뭐야.
얘가 현우랑 무슨 사이인지 제대로 말 안 하잖아.
혹시 둘이 사귀기라도 해?”
서준은 한숨을 쉬고는,
살짝 짜증이 섞인 표정으로
보미의 팔을 붙잡아 끌어당겼다.
“됐고. 따라와.”
“왜? 나 얘한테 아직..”
“보미야. 그만해.”
서준은 이람을 힐끗 보더니 손짓으로 말했다.
“신경 쓰지 마. 얼른 집 가.”
이람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작게 말했다.
“…고마워.”
그리고는 후다닥, 작게 몸을 웅크리며 자리를 떠났다.
남은 건 서준과, 어이없는 얼굴로 끌려가는 보미뿐이었다.
필름의 끝에는 언제나 네가 있었다. [필.끝.너]
- 달이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