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 나누지 못한 마음
4장. 기억하고 싶은 밤, 기억할 수 없는 밤
이람은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리며 몸을 일으켰다.
“으… 여긴… 어디지…”
형광등 불빛 아래 익숙하지 않은 천장이 눈에 들어왔고,
희미한 소독약 냄새가 콧속을 파고들었다.
몸을 일으키려다 팔에 꽂힌 링거 줄을 보고 흠칫 놀란 이람.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던 그녀는 창가에 기대앉은 조교 선배를 발견했다.
“어, 깼네. 정신 좀 들어?”
“네… 안녕하세요, 조교님… 여긴 병원이에요?”
“응. 너 술 마시고 쓰러진 거 데려오느라 진짜 혼났다. 덕분에 파티는 쫑 났네.
요즘 누가 억지로 술을 먹이니? 조심 좀 하지 그랬어.
하… 나만 교수님께 혼나게 생겼네.”
“…죄송해요…”
진짜, 왜 그랬을까.
현우와 대화라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이람은 평소에 먹지도 않는 소주를 마셨던걸 후회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내가
필름이 끊길 정도로 술을 마셨다는 사실이,
너무 죄스러웠다.
그렇게까지 취했던건
그 애를 향한 이람의 마음 때문이었을 거다.
이람은 아이들에게 둘러 쌓여 있던 그와,
그 옆에 앉아 있던 예쁜 여자애가 떠오르자 괜히 마음이 더 쓰렸다.
‘말이라도 한번 걸어보고 싶었는데..’
이어서 말하는 조교의 목소리에 ,
이람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조교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혹시라도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을까 걱정스러워서.
“그래도 너 이름이 특이해서 접수하기 쉬웠어.
새학기 첫날이라 이름도 잘 모를 법한데…
현우가 너 이름으로 바로 접수하더라.”
‘현우…’
그 이름이 입 안에서 맴돌았다.
분명 술자리에서 자기소개 할 때 그 애의 이름이 현우였었지. 김현우.
흔한 이름이지만, 첫눈에 반한 이의 이름을 외우고 기억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 애가… 같이 있었던 거야?
그럼… 내가 쓰러진 모습도 다 봤을 텐데.
아… 혹시 이상한 말이라도 한 건 아니겠지?’
이람은 머리보다 가슴이 더 아팠다.
아픈 것보다 더 괴로운 건, 부끄러움이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당장이라도 들어가 숨고 싶었다.
“쓰러졌을 때 기억은 나니?
너 업고 응급실까지 달려온 게 김현우였어.
여자애들 부럽다고 난리가 났었다 아주.
걔, 그 얼굴에 안 어울리게 은근 책임감 있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 이람은 거의 울상에 가까워졌다.
‘그 애가… 날 업고 병원까지…
정신이 있었다면 분명 얘기도 했을 수 있었을 텐데…’
창피함도 컸지만,
그 순간 그와 한마디조차 나눠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 가슴 아팠다.
그리고 그렇게 단 한 마디, 한 순간조차
기억나지 않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기억하고 싶었던 그 밤은,
이람에게 가장 기억할 수 없는 밤이 되어버렸다.
필름의 끝에는 언제나 네가 있었다. [필.끝.너]
- 달이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