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이람의 곁에 남겠다고 고집을 피우다
결국 조교 선배의 명령에 못 이겨 집으로 돌아온 현우는,
이람이의 미약한 숨결이 아직도 목 뒤를 간질이는 것 같아
좀처럼 잠들 수 없었다.
작은 원룸.
책상, 옷장, 그리고 침대뿐인 정돈된 방 안에서
현우는 가만히 누워, 조용히 천장을 바라봤다.
그렇게 한참을 누워있다 벌떡 일어나서는
지갑 속에 고이 간직했던 사진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사진 속엔 단발머리의 귀여운 소녀가 살짝 미소 짓고 있었다.
현우는 그 모습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다,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때도 귀여웠는데, 지금...
더 예뻐졌네.’
조심스레 사진을 다시 넣으며,
현우는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액자들로 시선을 옮겼다.
그 중 하나엔
희끗희끗 하얗게 색이 변하려는 머리카락의 부부와,
동그란 안경을 쓴 왜소한 소년이 꽃다발을 들고 웃고 있었다.
‘나, 정말 많이 달라졌구나.
못 알아보는 것도.. 이해돼.’
현우는 잠깐 쓴웃음을 지었다가
문득 휴대폰을 들어 어디론가 문자를 보냈다.
[엄마, 밤 늦게 죄송해요.
저… 찾았어요. 이람이요!]
곧장 답장이 왔다.
[현우야!! 정말이니?
정말 잘 됐다! 이람이 많이 컸지? 어때?]
중간중간 맞춤법이 틀린 문자에 현우는 피식 웃으며 다시 답했다.
[네. 더 예뻐졌어요.
아직 안 주무셨어요?]
잠시 후, 전화벨이 울렸다.
“현우야, 정말 잘됐다!!
그렇게 찾더니 이람이 결국 찾았네!!
학교는 어때? 안 그래도 궁금해서,
여태 TV 보면서 안 자고 연락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빠는 기다리다가 먼저 들어가서 잔다~”
수화기 너머 수다스러운 목소리에 현우는 웃으며 대답했다.
“죄송해요.
이람이한테 정신이 팔려서 전화 드린다는 걸 깜박했네요.
학교 좋아요. 캠퍼스도 넓고.”
엄마의 말이 쏟아졌다.
“그래, 이람이는 어떻게 찾았어?
예상대로 진짜 같은 과인 거야?
엄마아빠 말 안 듣고 굳이~ 너가 그 학교 수의학과 간다고 했을 때,
내색은 안 했지만 엄마아빠 좀 속상 했었어..
너 사진 대회에서 상탔던 게 몇 개인데...
사진과 가면 성공할 거라고 다들 얘기 했었잖아.
그래도 찾아서 다행이다.
거기서 이람이 못 찾으면
너 올해 수능 다시 보라고 하려고 했어~”
현우는 멋쩍게 웃었다.
“네, 죄송해요.
예상대로 같은 과예요.
13살 때 이람이라면, 꼭 이 학교 수의학과 올 거라 확신했거든요.”
“그래, 이람이 아버지는? 잘 계신대?
이람이 동생은?
그때 갑자기 해외로 가서 인사도 제대로 못했었는데…
너도 그때 이람이 말도 안하고 떠났다고 한참 울고, 연락도 안 되고…
이람이 아버지는 이번엔 어디에서 의료봉사 하신대?"
현우는 잠깐 과거를 떠올리다 대답했다.
“사실... 아직 얘기 못 해봤어요.”
전화기 너머, 조금 놀란 숨소리와 조금 커진 목소리.
“뭐어~?
같은 과라며?
혹시 이람이가 널 못 알아 봤니?”
현우는 심장이 저릿해 지는걸 느끼며
애써 웃었다.
“네...”
엄마의 다정한 위로가 이어졌다.
“괜찮아, 괜찮아.
곧 얘기하겠지~ 그리고 못 알아 볼만 해~
네가 어릴 때 워낙 눈이 안 좋아서, 두꺼운 안경 쓰고 그랬잖아.
서준이 엄마는 아직도 너 볼 때마다 깜짝 놀란다더라.
라식수술 하고 키도 크고, 완전 용 됐다니까~
참, 서준이는 잘 있지? 서준이 안 본지도 오래됐다 야.
서준이가 무슨 과라고 했지?”
“호텔경영학과요.
우리 과 바로 옆 건물이라 자주 볼 것 같아요.”
“그래, 공부도 잘 못하던 애가 너 따라 그 대학교 간다고 그렇게 벼락치기 하더니,
나중에 추가 합격 발표돼서 엄청 좋아했잖아!
늦게 발표나는 바람에 너랑 같이 집도 못얻고..
에휴, 둘이 같이 살면 돈도 아끼고 참 좋을텐데..”
현우의 엄마는 작은 한숨을 쉬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근데 난 진짜로 걔가 그 학교 들어갈지 몰랐다 야.
이람이 그렇게 떠나고 너 중학교 올라가서 서준이 안 만났으면...휴..
서준이한테 잘해라, 현우야.”
현우는 서준이가 주먹을 불끈 지며 의리를 외치는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네, 알겠어요.
아픈 데 없으시죠? 이제 그만 주무세요.”
“그래, 엄마 아빠 둘 다 건강하지~ 오늘도 아빠랑 1시간 걷고 왔어.
또 궁금한 게 많은데, 나중에 또 통화해~
잘 자고, 밥 잘 챙겨 먹고, 용돈 부족하면 바로 연락하고~”
“네, 엄마.
어디 아프시면 꼭 연락 주세요.
얼른 주무세요.”
“그래, 끊자~
현우야 잘 자고, 또 통화해~"
전화를 끊고
현우는 얼굴에 미소를 띠우며 액자 속 사진을 다시 한 번 쓸어봤다.
잠들지 못하는 밤,
뒤척이며 옛 추억을 떠올리고,
병원에 누워있을 이람이 생각에 걱정하다가,
복잡한 마음에 사로잡히다,
어느새, 조용히 잠이 들었다.
필름의 끝에는 언제나 네가 있었다. [필.끝.너]
- 달이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