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의 절규, 임신 10주 차
레몬맛 임산부 캔디를 입안에서 굴리며 '오늘은 좀 살겠네, 이렇게 타자를 칠 수 있다니.'를 되뇌고 있다.
아마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초기 임산부는 없을 것 같다.
나도 며칠 전까지는 카톡조차 읽는 게 힘들었으니 말이다.
읽는 게 어려워지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마치 입덧처럼, 내 살냄새와 내가 뿌리던 향수냄새가 갑자기 역겨워지고 집중해서 무언가를 보는 것조차 현기증이 난다. 임신은 스스로를 '내가 알고 있는 그가 맞는지' 의심하게 하는 감각의 변화로 강력히 인식된다.
임신테스트기에서 두줄을 확인하고 기뻐했던 것도 잠시, 나는 곧 깊은 잠에 빠졌다.
말 그대로 하루에 10시간씩 잠을 자기 시작했다.
아가를 확인하러 병원에 첫 방문했을 때 의사는 초음파로 아가를 가늠해더니 7주 차 정도가 되었다고 했다.
아마 이때쯤이었나보다.
내가 무한히 잠의 세계를 빠져든 순간이 말이다.
간신히 일을 하고 돌아와 저녁을 먹고 9시쯤 되면 24개월 첫째와 남편과 나란히 누워 오늘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다 중간에 아가도 말을 이해했는지 내 질문에 대답을 하고, 셋 중에 누가 먼저 잠들었는지 아무도 모른 채 잠이 든다.
아가가 뒹굴던 내가 뒹굴던 데굴거리면서 자다 보면 어느덧 시계는 아침 7시다. 가까스로 눈을 뜬다.
잠순이가 되는 것은 자기 계발에는 있어 더할 수 없는 장벽이었다. 그런데 곧 그 장벽에 더해 몸도 말을 듣지 않기 시작했다. 꼿꼿이 앉아있을 수가 없고 누워있고만 싶었다. 몸이 말 그대로 천근만근이다.
'갑상선 검사를 해봐야겠어.'
새벽에 일어나 명상을 하고 감사와 꿈을 적고 일하러 가는 것에 신이 나던 나에게 그 "신"이 사라졌다. 무기력이 임신증상이라고 인정하기 싫던 나는 '비정상적이야. 피검사가 필요해'라고 생각해 버렸다.
임신 전 나는 말 대로 강박적 자기 계발러였다.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지만 인정한다)
아마 그 시작은 20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여 내과의사되어, 현재 일하는 병원에서 진료교수가 되기까지. 여러 가지 자기 계발 세트를 해봤더랬다. 새벽에 일어나 공부하고 고정된 루틴을 반복하기. 집으로 돌아오며 의사가 된 모습을 상상하기. 의사가 된 이후에는 열혈 습관 만들기 챌린지와 감사와 꿈을 적는 저널링 쓰기를 비롯해, 몇 년간의 독서모임 리더를 거쳐 작년 12월까지도 매주 새벽독서/글쓰기 모임을 운영했던 터였다. 52주 동안의 운영을 계획했던 새벽독서/글쓰기모임이 38주 차를 향해가던 무렵 몸이 약간씩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한창 마음 챙김 기반 명상을 수련하며 몸감각에 좀 더 예민해져 있어서 그런지, 피곤도 한층 더 잘 느껴졌다.
'몸이 전이랑 다르군.'
임신이었다.
프로 자기 계발러라고 자부하던 나는 스스로에게 또는 임신에게 강하게 저항해 보았다.
'초기 임산부들이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강력한 고정관념이야!'라고 외치면서 말이다.
싸우거나 아니면 도망가거나(Fight or flight)라는 말이 생각난 거 보니 임신 초기의 무기력함이 내게는 위기의 순간으로 인식되었나 보다. 지인에게 "이 무기력함을 다 이겨내고 싶어요."라고 울부짖었더니 지인이 말했다.
"달하씨는 지금 한번 더의 힘 보다 한번 덜의 힘이 필요한 때인 것 같아요."
10시간의 취침에도 천근만근인 몸과 (나의 갑상선 검사 수치는 정상이었다) 집중할 수 없는 눈, 극도로 예민해진 후각과 울렁거렸다가 속이 쓰렸다가 종잡을 수 없는 위장상태는 어디서부터 주의를 기울여야 할지 모르겠는 지경에 이르러 버렸다. 산부인과 의사인 친구에게 내가 이러는 것이 다 호르몬 때문이니?라고 물었다가 "응."이라는 단순 명료한 대답에 "그래, 그렇지"하고 허허 웃어버렸다.
자 그럼 나의 자기 계발은?
그래, 잠시 집어치우자.
아니면 자기 계발에 대해 관점을 바꿔보는 것도 방법이겠다.
어쩌면 이 시기는 내가 자기 계발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을 깨부수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
내가 주로 만나는 전반적으로 에너지 레벨에 낮은 말기환자들과 그들을 돌보는 보호자들을 보면서 자기 계발이란 무엇을 더 해야만 충만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의 존재 방식을 지켜나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적어도 지금은 이렇게나마 의미를 부여해야 현재의 고통을 들여다볼 수 있겠다.
힘듦을 모면하려 이렇게 저렇게 의미를 부여하고는 힘듦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리는 알량한 사람이 될지, 아니면 정말 고통을 바라보는 사람이 될지 지켜봐야겠다.
그저 다정한 눈으로 지켜볼 사람이 내 몸에 둘이다.
하나는 나, 하나는 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