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제가 살찐 게 아니라

아가 때문이에요...

by 달하

임신 20주 차.


가방에 달린 분홍색 임산부 배지를 보고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해 주시는 분들에게 미소와 감사를 보낸다. 그들에게 감사를 보내며 동시에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느라 정신없는 분들에게는 미움을 느낄 만큼, 몸은 무기력함에서 벗어났다. 몸은 신기하게도 임산부어플에서 알려주는 주차별 증상 코스대로 차례를 밟아가고 있다. 첫째를 낳았지만 두 번째 겪는 임신은 또 새롭다.


나는 요즘 늘 핑크임산부 배지를 달고 다니는데, 첫 번째 목적은 적당히 배가 나온 이 주수에 좀 더 마음이 불편하지 않게 대중교통 임산부배려석에 앉기 위함이고 둘째는 내가 살이 찐 것은 임신해서임을 강조하고 싶어서이다. 내가 살이 찐 게 아니라니? 스스로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멋지지 않아 숨기고 싶었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 날, 바꾸어 멘 가방에도 배지를 옮겨다는 수고를 하는 것을 보며 스스로에게는 숨길 수가 없었다.


이 주수의 엄마들은 식욕이 늘어납니다.


이미 몇 주전부터 식욕이 늘어 먹는 것들에 진심을 보이다 어느 날 어플을 켜보고 깜짝 놀랐다. 당연히 식욕이 늘어나는 것이구나! 갑자기 얻게 된 면죄부에 마음 한편은 씩 하고 웃었다. 직장으로 가는 동선은 샌드위치 맛집을 들릴지, 국숫집을 들릴지에 따라 달라졌다. 저녁 메뉴는 늘 임산부인 내가 결정하는 특권이 주어져 퇴근길에는 늘 지금 무엇이 먹고 싶은지 스스로와 진심으로 대화했다. 13주 차부터 식욕이 돌기 시작했으니 이 생활을 한지 근 한 달이 지나자 몸이 슬슬 변하기 시작했다. 체중이 는 건 당연지사였다.

딱 맞게 맞춰진 병원가운은 등부터 끼기 시작해서 등빨의 기운이 호랑이처럼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 시점부터였다. 내가 분홍색 임산부 배지를 소중히 모시고, 병원에서도 직원증의 줄 색깔을 임산부를 나타내는 분홍색 목줄로 변경한 것이 말이다.


이건 내가 살이 찐 사람이 아니라, 임신을 해서 그런 거예요!

굳이 이야기해야 할 대상도, 관심을 가지는 대상도 없는데 왜 그렇게 그게 항변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아...... 내가 아직 자유롭지 못하구나.'


고등학교 시절 작은 키에 63kg에 육박하며 대학생이 되어 죽기 살기로 10kg을 뺐었다. 그리고 몸무게 관리에 전전하며 지내던 시기가 십수 년. 임신 중기가 되어가니 동그랗게 나온 배만큼 가슴도 등도 다리도 밸런스를 맞추려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 식욕에 충실해 먹다 보니 5킬로가 금세 늘었다. 몸의 형태도 점점 누가 봐도 임산부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나마 마음 챙김 명상을 해왔기에, '이게 임산부에게는 있는 그대로지 뭐'라는 생각이 힘겹게 가동했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 날에도 임산부 배지를 슬며시 챙기는 나를 보며 아뿔싸했다.


"내가 살이 찌려고 찐 게 아니라 임신해서 그런 거랍니다"라는 말이 왜 그렇게 하고 싶은 건지. 임신을 해도 팔다리는 늘씬하고 배만 동그랗게 나온 모델 같은 임산부들을 한편 동경하거나, 어쩌면 살이 찌고 있는 스스로를 혐오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또는 살이 찌는 것은 "추"한 것이고 임신을 해도 여자로서 날씬함 유지하는 것이 "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늘 건강한 생각만을 하고 살 수는 없겠지만, 그 어느 것도 그리 건강해 보이진 않는다.


일단 만고의 진리.

배가 차기 시작하면 숟가락을 내려놓자. 생각보다는 몸이 단순히 실행하기를 기대해 보자.


여러모로 단순함이 나를 살릴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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