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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달하 May 02. 2019

직장생활 6년 만에 악수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불편함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지요

나는 꽤나 운이 좋은 외국인이다. 독일어가 전혀 안 되는 상태였음에도, 이곳에 온 지 채 얼마 되지 않아 기존의 경력을 이어갈 수 있는 직장을 얻었기 때문이다. 18개월 안에 독일어 시험에 통과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독일에 다국적 프로젝트가 많은 덕분에 영어만으로도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몇 번의 이직을 경험했지만, 외국에서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마치 다시 신입사원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래,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해보자!'


나는 마치 만화 속 주인공처럼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는, 열정 가득한 신입사원의 마음으로 노트북을 열었다.  




갓 나온 새 노트북과 함께 주어진 나의 첫 임무는 사내 시스템에 정보를 입력하는 것이었다. 아직 길이 들지 않은 뻑뻑한 마우스를 휙휙 돌려가며, 화면 가득한 빈칸을 채워나갔다.

 


막힘없이 정보를 입력하던 중 주소란에서 손이 멈췄다. 독일 주소는 대부분 거리명이 들어가고, 그 마지막에는 '스트리트(Street)', 즉 '거리'나 '길'이라는 뜻의 'Straße(슈트라세)'라는 단어가 붙는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ß(에스체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QWER로 시작되는 키보드의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을 훑어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옆에 있는 독일인 동료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핫, 너한테는 안 보일 수도 있겠구나. 기 있어!'


나를 당황시킨 요상한 알파벳 녀석은 숫자키가 있는 자판 위쪽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아니, 이게 무슨... Y(와이)야... 너 왜 거기 있니...?'


분명 왼쪽 새끼손가락 쪽에 있어야 할 Y키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 키보드를 노려보고서야 중간 위쪽에 자리 잡은 Y를 찾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원래 그 자리에 있어야 할 Z(제트)는 Y의 자리에 놓여있었다. 문제는 회사 컴퓨터 만이 아니었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일을 하고 돌아와, 한국에서 가져온 개인 노트북의 키보드로 돌아올 때면, 끊임없이 오타를 연발하고 있었다. 일주일 정도 지나자 새로운 키보드는 조금씩 손에 익어 들어가기 시작했지만, 그 후로도 사소한 불편함들은 매일매일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튀어나왔다.

 



입사 후 몇 개월이 흘렀을 때였다. 나는 각기 다른 나라에서 모인 동료 컨설턴트들과 함께, 런던에서 열린 한 사내 교육 프로그램에 참석하고 있었다. 경력이 오래된 선배들이 강사가 되어 새로운 컨설팅 방법론을 가르치고, 참가자들은 팀을 이뤄 프로젝트 과제를 수행해나가는 교육이었다. 프로그램의 마지막 날, 수업을 진행했던 선배들이 이번에는 가상의 고이 되어 우리가 준비한 최종 발표를 평가하기 위해 회의실에 모여있었다. 회의실로 들어선 나는, 발표에 앞서 고객 역할로 앉아 있던 선배님들께 짧은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발표를 맡은 *** 컨설팅사의 박은지입니다."


내 소속과 이름을 밝히며 살며시 악수를 청했다.


"음... 다시 시작해볼까요?"


아직 준비한 발표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독일에서 온 알렉스 선배가 나의 말을 뚝 끊었다.


"은지 씨, 나랑 다시 악수를 해볼까요?"


나는 의아한 얼굴로 손을 뻗어 선배의 손바닥에 갖다 대었다.


"자, 여기가 문제예요. 그렇게 살짝 갖다 대면, 상대방이 은지 씨를 예의 없는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엄지를 제외한 네 손가락을 쫙 펴고 상대방의 손을 엄지와 살짝 잡으며 인사했던 나의 방식이 격식 없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내 손바닥과 상대의 손바닥이 정확히 맞닿고 손가락에는 너무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을 만큼 힘을 주어 꼭 잡아야 예의를 차린 악수가 된다고 말하며 선배는 내 손을 꽉 잡아 보였다. 주로 목례를 주고받는 우리 인사에 익숙한 나는, 엄지와 검지 사이가 쏙 들어가 손바닥 전체를 완전히 겹쳐놓는 그 악수가 나는 왠지 어색하기만 했다. 다행히 발표는 잘 끝냈지만, 나는 '독일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악수 연습하기'라는 숙제를 받아 들고 집으로 향했다.





외국어로, 심지어 독일에서 영어로 일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독일어가 서툰 만큼, 영어만 가지고 내 능력을 100% 이상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새벽까지 컴퓨터 앞을 떠나지 못한 적도 많다. 다들 독일에서 일하면 흔히 말하는 워라벨, 일과 사생활의 경계가 뚜렷하고 자유로울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 곳에서도 컨설팅 업무는 한국처럼 야근도 많고 때로는 주말도 반납해야 한다. 거기다 다양한 국가의 동료들, 고객들과 만나 일을 하다 보니, 독일뿐만 아니라 각 국가의 문화나 비즈니스 스타일을 빠르게 파악하고 맞추어 나가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한국에서 6년간 쌓아왔던 나의 경력이 자신감이 되어줄 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저만치 치솟은 자존심만 남아, 작은 실수 하나에도 마음을 다쳐가며 첫 해를 훌쩍 흘려보냈다. 특히 미팅을 할 때마다 나 하나 때문에 전체가 영어로 의사소통을 한다거나, 유명한 독일 기업의 프로젝트에서 원어민 컨설턴트만을 찾는다고 메일이 올 때면, 나는 외국인이라는 사실이 무슨 큰 장애라도 되는 듯 괜스레 주변의 눈치를 살피곤 했다. 하지만 매일매일 부딪히고 깨지며,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의 나는, 조금은 더 여유롭고 조금은 더 유연해진 것 같기도 하다.


'아, 내 나라에서, 내 나라말 쓰며 신나게 일하고 싶다.'


매일매일 이 생활에 익숙해져 가면서도, 유난히 하루가 길게 느껴지는 날이면 이런 생각을 한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마치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떼 내고 달리 육상선수처럼, 무슨 일이든 뚝딱뚝딱 다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근거 없는 용기가 샘솟을 때도 있다. 하지만 어디서든 좋은 면이 있으면 힘든 면도 있는 법이고, 고생스럽게 부딪히고 경험하는 만큼, 언젠가 한 뼘 더 성장한 나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오늘도 나를 움직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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