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하늘 1 - 2

치맥.

by Dali record

정욱이 미진을 만난 건 대학교 2학년 겨울이었다. 그는 하루빨리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빠 없이 엄마 혼자 키워낸 외동아들인 정욱의 장래희망은 언제나 취업이었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딱히 정하지 않았다. 그저 돈 벌어서 고생한 엄마에게 이제 그만 일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엄마에게 용돈도 주고 여행도 보내드리고 싶었다. 정욱의 바람은 그게 다였다.

연애도 당연히 관심이 가지 않았다.


미진은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에 알게 되었다. 그는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자신의 아이가 아닐 수도 있지 않냐며 연락을 끊었다. 울고 우는 사이 뱃속의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고, 미진은 아이 아빠가 되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런 그녀의 눈에 들어온 사람은 묵묵히 쳇바퀴 같은 하루를 보내는 정욱이었다. 미진은 정욱의 발 앞에 쓰러졌고, 그의 등에 업혀 병원에 갔다. 미진은 정욱의 손을 붙잡고 매달렸다. 아이 아빠가 되어달라고 했다. 정욱은 거절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그의 집 앞에 아이를 안은 미진이 찾아왔다. 그녀는 갈 곳이 없다며 며칠만 신세를 지겠다고 했다. 정욱의 어머니는 미진과 아이를 살뜰하게 보살펴주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미진은 아이만 두고 떠났다. 정욱은 학업을 그만두고 일터에 뛰어들었다.

아이는 미래라는 이름으로 호적에 올렸다. 아이는 예쁘고 착하게 자랐다. 수학여행을 가던 날 새 운동화를 신겨주자 뛸 듯이 기뻐하던 아이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쌈짓돈을 쥐어주는 할머니에게 괜찮다며 모아둔 용돈으로 충분하다며 한사코 거절하는 고운 마음씨의 아이는 그렇게 집을 떠나 돌아오지 못했다.

추락사였다.


어머니도 정욱도 몇 달을 앓았다.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어머니였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니. 미래도 네가 이러는 걸 보면 하늘에서 슬퍼할 거다."


그렇게 정욱을 일으켜 세운 어머니는 한 달 뒤 미래 곁으로 갔다. 그는 같은 직장을 다니고 같은 일을 하며 긴 세월을 흘려보냈다. 그에게 옆집 아주머니는 장가가라며 뉘 집 자식인지도 모르는 여자들 이름을 늘어놨다. 정욱은 자신에게는 아이가 있지 않냐며 한사코 거절했다. 그렇게 한 세월이 또 지나갈 즈음 옆집 아주머니는 옆동네 여자 이야기를 했다. 너같이 소처럼 일만 하던 처자인데 다리를 못 쓰게 되었다니 어쩌니. 신랑감을 얻는다고는 하지만 누가 데려가겠어. 너도 걔도 딱하다 딱해. 정욱은 아주머니의 말이 끝나기 전에 만나보겠다고 했다.


핏기 하나 없는 희숙의 얼굴은 어딘지 자신과 닮아 있는 듯했다. 정욱은 희숙의 작고 떨리는 손을 바라봤다. 커피잔 하나 제대로 기울이지 못하는 그녀의 수줍음이 귀여웠다. 낡은 구두와 낡은 시계 낡은 가방은 기품 있어 보였고, 염색 한 번 하지 않은 듯한 새까만 머리카락은 그녀의 흰 피부를 더욱이 곱게 보이게 했다. 어쩌다 그녀의 고갯짓에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릴 때면 안타까움에 그만 의자를 밀칠 뻔했다. 정욱은 그녀에게 저여도 괜찮다면 자신이 평생 휠체어를 끌겠노라 말했다.


희숙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훔쳤다. 정욱은 희숙이 끄덕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를 사랑해서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희숙은 박물관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그림 보는 것을 좋아했는데, 마음에 드는 그림을 볼 때면 그녀는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고 눈썹을 추켜올렸다.


타닥타닥.


철퍽철퍽.


정욱은 굵은 비가 반가웠다.

치맥 하기에 딱 좋은 날씨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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