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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i record Jan 20. 2022

우리의 뜨거웠던 후지산로쿠.

우리가 기억하는 위스키의 첫 잔.

술을 많이 마시는 편도 아니고 센 편도 아니지만 맛있는 술을 찾게 되다보니 어느새 하나의 취미가 되었다. 그러다보니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 사람들과의 대화도 즐겁다. 이제는 일상의 일부분이라 할 정도로 우리에게서 술을 즐기는 즐거움은 빼놓을 수 없다.


어느 날 문득 처음 위스키를 마신게 언제였는 지 더듬어보았다. 정확하게 언제부터였는 지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우리만의 하찮은 기념일 따위로 정해보자면  인상깊게 기억하는 잔이 있다. 


지금은 노징글라스에 따라 향과 맛을 따져보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그 때의 추억을 떠올려 보니 나도 나름 재밌게 대학생활을 보냈구나 싶어 헛웃음이 나온다.



대략 14년 전이다. 이렇게 오래전인가 하고 잠시 멈칫할 정도로 아직도 생생한 그때의 위스키는 우리에게 그저 그냥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이었다.


우리는 파릇파릇했던 20대 초반에 바다 건너 일본에서 만났다.

그리고 어영부영시작된 히스 씨와의 연애시절.

돌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음이 터진다던 때다.

대학교 시절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술자리다.


다들 비슷하겠지만 학교 수업이 끝나고 유학생활을 무사히 마치기 위해 일주일에 세 탕을 뛰었던 아르바이트 중 하나를 끝 마치고 나면 지칠 만도 한데 하나 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다들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우리들의 체력은 슈퍼맨급이라도 되었나.

하긴 가라오케를 가겠다고 새벽에 3시간을 걸어가서 해가 뜨고 나서야 집에 기어들어 갔으니.

슈퍼맨도 혀를 차고 갈지도 모르겠다.


무리 중에는 요리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한 명쯤 있기 마련인데 다행이 그게 우리 중 한 사람이다.

무튼 그렇게 아지트는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다행히 우리들의 요리사는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던 몇 안 되는 베짱이였기에 개미들이 도착하기 전 먹음직스러운 안주들을 차려놓았다. 참고로 그의 별명은 한 동안 아버지였는데 아버지라는 노래를 기가막히게 잘 불렀던 것이다.

 

그가 부탁하는 것은 오는 길에 술을 사오는 것이었다.


사실 일본의 편의점은 알다시피 벤또라하는 도시락 등이 잘 나오기 때문에 매번 요리라고 할 만한 것이 필요하진 않았지만 외국에 가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을 증명하듯 김치를 싫어하던 나도 유학생활을 하면서 김치의 맛을 알아버렸고, 다들 한국요리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었다.

그때의 우리들이 즐겨마시던 술은 후지산로쿠라는 위스키다.

(아 드디어 위스키가 튀어나온다.)


지금에선 학생들이 매일같이 그걸 어떻게 마시냐며 말도 안 된다 할 수도 있지만 그때는 그랬다.

콤비니(편의점)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고,

당시 우리에게도 만만한 가격(당시 기억으론 1,900엔 정도)의 맛 좋 술이었다.  지금은 4~5,000엔 정도 한다고 한다.


어디선가 일본 여행 쇼핑리스트로 추천되는 글을 본 거 같긴 하지만 지금의 가격이라면 앞으로는 손이 가진 않을 거 같다.


하지만 우리가 설마 맛으로 이걸 먹었을까?

그런 기대를 버리는 이야기는 아니다.


50도의 위스키의 적정 도수를 갖고 있는 이 훌륭한 블렌디드 위스키는 불이 붙는다.


청춘들에게 이 만한 술이 또 있을까.

부엌에 있는 가지각색의 컵들에 가득 술을 따른 다음 담뱃불을 붙이듯 라이터 불을 붙이고는 당연히 원샷이다.


참으로 다행히 그 많은 파란색의 뜨거운 불들은 단 한 번도 술잔 밖으로 나온 적이 없다는 거다.


이게 우리의 위스키에 대한 첫 기억이다.

맛은 솔직히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니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의 파란불의 위스키 잔은 어언 14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즐거운 추억이고 이야깃거리이며

위스키에 빠진 우리들의 소소하고 소중한 역사이다.


그때의 우리들의 술잔은 그냥 그런 맛이었던 거 같다. 그냥 그런 맛이 있는 맛.


실제 모습과 그림이 다를 수 있습니다.

새삼스럽게 그때의 후지산로쿠를 처음으로 검색해보았다.

후지산 기슭에 잠들어 있는 원주에서 엄선하여 블렌디드한 기린 위스키의 대표작. 원주의 숙성 상태를 블렌더가 지켜보며 숙성 연수보다는 각각의 원주가 개성을 발휘한 타이밍을 확인하고 절묘한 밸런스로 블렌딩. 후지고텐바증류소의 위스키에 대한 신념을 담은 작품으로 표정이 풍부한 원주가 만들어내는 하모니와 복합적이며 깊고, 원숙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맛에서는 서양배나 파인애플, 오렌지필을 연상시키는 프루티, 화려한 과실 향이 나며, 흑설탕과 구운 과자 같은 달고 향기로운 풍미가 더해지는 원숙한 맛이 특징이다.

참고 : drinx.kirin.co.jp/


@달리레코드 dali.rec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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