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리아 Apr 19. 2024

원래 그런 아이는 없다.

새 학기 첫 수업을 하는데 책상에 엎드려 있는 아이가 있었다. 졸린 눈에 구부정한 자세의 아이는 또래보다 덩치도 작고 왜소해 보였는데, 맨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혹시 아픈가 싶어서 가까이 갔더니 책상에 책도 꺼내놓지 않고 있었다. 당시 나는 담임이 아닌 교과 수업 교사였기에 아이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니?”


라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근처에 앉은 다른 아이들이 내게 말했다.


“선생님, 얘는 원래 그런 애예요.” “원래 수업 시간에 책도 안 펴고 필기도 안 해요. 작년에도 그랬어요.”


라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책상 한편에 적힌 아이의 이름표를 보고서 자세를 낮춰 아이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00야 안녕? 나는 달리아 선생님이야. 우리 책 한 번 펼쳐서 앉아볼까? 너는 할 수 있어."     


아이는 나의 말에 아이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나는 수업 내내 아이가 책을 펴는 것, 연필을 잡는 것, 글씨를 한 자씩 쓰는 것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격려했다. 아이가 진도에 맞게 책을 펴서 교과서의 질문에 답하는 문장을 썼을 때, 나는 같은 반 친구들에게 칭찬의 박수를 함께 치자고 했다. 그러면서 반 전체 아이들에게 얘기했다.     

“원래 그런 아이는 없는 거야.”     


엉겁결에 박수를 받은 아이는 마치 꺼진 전구에 불이 들어온 것처럼 반짝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반쯤 감겨있었던 눈이 커지고, 콧구멍은 벌렁거리고, 입꼬리는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아이 안의 더 어린아이를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더 많이 사랑받지 못해서, 혹은 알 수 없는 상처로 인해서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어린아이가 빛으로 걸어 나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 : 픽사베이

그 뒤로 아이는 수업 시간마다 책을 펴고 있었고, 손을 들어 발표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질문과 관련이 없는 엉뚱한 답변을 하기도 했지만, 나와 반 친구들의 격려와 칭찬 속에서 아이의 어눌했던 발음도 점점 나아졌고, 아이는 더 이상 책상에 엎드리지 않고 허리를 세우고 수업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마치 마른땅에서 시들어가며 축 쳐져있던 꽃이 물기를 가득 머금고 다시 줄기를 뻗고 꽃을 피워내는 느낌을 받았다.


동시에

인간은 응시에 의해 조각된다.


라는 정신분석가 이승욱 님의 글이 떠올랐다. 우리가 누군가를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편견을 가지고 바라본다면, 그 시선은 사람을 가두는 틀이 되어 그 사람은 마치 돌로 만든 조각상처럼 실제로 그렇게 굳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조건과 상황에 따라 변화될 수 있는 존재이며, 아이들은 어른들에 비해 몸과 마음이 유연한 만큼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오랜 시간 지켜보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어떤 아이를 원래 그런 아이로 낙인찍거나 포기하는 것은 그러한 변화의 가능성을 닫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최대한 아이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바라보려 노력한다.     


최근에는 수업 자료를 찾다가 지브리 애니메이션 작곡가로 유명한 히사이시 조가 오케스트라 지휘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너무나 밝은 표정으로 웃으며, 두 팔과 가슴으로 많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품에 안는듯한 자세로 즐겁게 지휘를 하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그는 바이올린 등 섬세한 소리를 내는 악기를 지휘할 때, 트럼펫 등 소리가 큰 관악기를 지휘할 때, 북이나 타악기들을 지휘할 때, 솔로 연주와 반주를 지휘할 때 모두 다른 강도와 자세와 표정을 지으며 마치 춤을 추듯 자연스럽게 다양한 음악을 이끌어갔다.


https://www.youtube.com/watch?v=jT7m2_ngPdQ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수업을 할 때 내 모습은 어떨지 돌아보게 되기도 했다. 교실 안에는 각자 다른 모양과 특성으로 다양한 소리를 내는 악기 같은 아이들이 모여있으며, 교사도 지휘자와 비슷한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를 보며 나는 아이들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그 특성을 살리면서도, 전체적으로 조화롭게 어울리도록 이끌어내는 것이 교사가 하는 일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충분히 자신의 소리를 내면서도 그것이 소음이 아니라 하나의 아름다운 음악으로 빚어가는 예술은 수업과도 닿아있는 부분이 많다. 그런 면에서 수업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고, 가르치는 기술이 아닌 예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픽사베이

갈수록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을지 몰라도, 나는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내가 만나는 아이들을 가슴으로 품으며, 모든 아이들 안의 가능성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봄’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보다’인 것처럼, 겨울을 살고 있는 사람들 안에서도 온기와 빛을 보고 되찾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구절처럼 ‘우리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이니 말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오랜만에 미세먼지와 황사가 없는 맑은 봄하늘과 그 아래에 연둣빛으로 뒤덮인 산을 바라보고 있다. 매년 이 계절이면 나는 ‘화양연화花樣年華’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한자어의 뜻처럼 ‘꽃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시절’은 우리가 마음을 나누며 사랑할 때 서로의 가슴에서 피어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지나가는 봄은 언제나 아쉽지만, 흘러가는 봄의 가운데에 서서 나는 기도한다.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당신을 사랑하게 해 주소서.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로 해서
이 세상 전체가
따뜻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 봄날, 사랑의 기도/안도현     


하늘과 땅 위에 피어난 꽃송이마다 내려앉은 봄햇살이 찬란하게 빛나는 날이다.     


이전 05화 감정과 '화' 다루기 수업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