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을 한참 들여다보던 신디가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프랑스인 특유의 영어 발음이 노래를 하는 것처럼 부드럽게 들려왔다. 신디는 인도 북부 다람살라에 지내면서, 홍채 리딩과 아로마, 마사지 등을 통해 사람들을 치유하는 테라피스트였다. 그녀가 살고 있는 정원에는 섬세한 손길이 깃든 꽃들이 가득 피어 있었다. 결이 고운 나무로 만들어진 바닥에 집의 한 면 가득한 통유리로 깊숙이 햇살이 스며들었다. 나를 편안한 자리에 앉게 한 신디는 눈을 통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며, 내 눈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태어나서 누군가의 눈을 그렇게 오래 쳐다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쑥스럽고, 낯선 기분이 들었지만, 투명하고 고요한 진한 밤색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자니 이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실제로 그녀는 눈을 통해 나의 성격, 몸의 상태, 습관, 병력 등 많은 것들을 알아내서 그를 차트로 분석해주었다. X-ray 같은 기계나 장비 없이도 나의 몸과 마음 상태를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누군가 나의 몸과 마음을 온전히 바라봐주는 것만으로도 투명하고 따뜻한 빛들이 스며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 안에서 몸의 긴장이 스르르 풀려나갔다. 슬픔의 감정으로 간이 아파하고 있다는 말에 이어, 내가 나 자신과 삶을 그대로 인정하지 못해 기관지가 막혀있다는 그녀의 말에 얕아져 있던 숨이 크게 쉬어졌다. 몸이 먼저 반응을 한 것이다. 신디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이 제대로 흐르지 못하고 몸속에 고일 때 아픔이나 병이 생긴다는 말을 해주었다.
감정이 몸에 영향을 미치고, 몸을 아프게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나는 우리의 몸과 마음이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어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말에 몸의 신체 기관과 연관된 여러 표현들을 떠올리면서 나는 몇 번이나 무릎을 쳤다.
'부아가 치민다.', '배알이 꼬인다.' '간담이 서늘하다.', '애간장이 탄다.'
라는 표현에서 처럼 우리가 어떤 마음이 들거나 감정을 느낄 때마다 몸은 반응하고, 그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몸살이라는 단어도 누군가는 '몸이 살려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풀이를 해서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다.
우울증의 기간 동안 폭식과, 과다한 수면, 운동 부족 등으로 시름했던 몸이 여기저기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았다. 내 몸의 곳곳에서 자신을 먼저 봐달라는 아우성이 들리는 듯했다. 사실 이렇게 몸은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는데, 나는 그 소리를 들을 생각을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랬기에 몸이 아플 때에도 증상에서 벗어나는 것에만 집중을 하고, 정작 몸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 안의 감정과 마음을 살펴볼 생각을 못했다.
나는 그렇게 몸이 내는 소리에 귀를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리들은 내 몸과 마음을 살리는 길로 나를 안내해주는 내비게이션이 되어주었다. 나는 나의 몸이라는 가깝고도 먼,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