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리아 Aug 08. 2022

몸이라는 신전

몸의 소리를 듣기 시작하면서, 나는 내 삶이 담겨있는 신비롭고도 커다란 책을 읽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몸은 정직하고도 성실하게 나의 지난 흔적들을 담아두고 있었다. 신디는 실로 마음과 몸은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스트레스나 상처, 정신적 충격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쌓여서 몸에 병을 만든다고 했다. 그래서 그 원인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뿌리 뽑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는 몸의 통증이나 아픔의 원인이 된 구체적인 사건이나 이유를 알기 위한 신디와 몇 차례 상담을 이어갔다.   


상담이라고는 하지만 이야기하는 쪽은 거의 나였고 그녀는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큰 반응이나 호응은 없었지만, 나의 깊은 내면을 바라보는 신디의 눈을 통해 나는 그녀가 나의 이야기에 얼마나 집중하고 또 공감하는지에 대해서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동안의 아픔이나 상처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났고, ‘내 안에 이런 부분이 있었나?’ 하는 부분까지 술술 흘러나왔다. 한참 동안 내 얘기를 가만히 듣기만 했던 신디는 내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당신은 당신의 몸을 사랑하나요?”

나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잠시 멈칫하다

  “네?”

라고 다시 반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의 말을 들어보니, 당신은 당신의 몸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요.”     

  

뜻밖의 말이었다. 사실 그전까지 내 몸에 대해서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었기 때문에 내가 내 몸을 사랑하는지 아닌지 조차 제대로 알 수 없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내가 내 몸을 얼마나 괴롭혔는지에 대해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의 몸이 다른 사람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서만 고민하고 맞춰서 살아왔었던 나의 모습들이 영상처럼 지나갔다.


TV나 광고 속에 나오는 길고 날씬한 연예인이나 모델들을 보면 그들과 내 몸을 비교하면서 우람한 팔뚝이나 군살들을 부끄러워했었다. 한 때 유행했던 스키니 바지를 입어 보았다가 스스로 내 다리는 코끼리라고 내 몸을 희화화해서 놀린 적도 있었다.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말이다. 남에게는 그토록 관심과 존중을 받길 바라면서도 정작 나 자신이 나에게 그럴 수 있다는 것에 놀라울 정도였다.


지하철이나 버스 등에 빼곡히 붙은 성형외과나 다이어트 광고에서는 ‘비포-애프터’ 사진으로, 성형을 해서 예뻐지면 정말 더 행복해질 것처럼, 삶의 활력을 찾은 듯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 광고들을 자꾸 보다가, 문득 찻장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 무언가 빠지거나 부족한 것 같고, 조금 더 예뻐지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의 지적과 압력이 더해졌다. 내가 생긴 대로 가만히 두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나만의 기준을 고수하기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여러 생각들에 잠겨있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신디는 내게 충분한 시간을 준 다음 조용하지만 힘이 있는 목소리로

  “당신 몸은 당시신전이예요.”

라는 말을 건넸다.

  그러면서,

  몸은 네 마음과 영혼과 삶을 담고있는, 그 자체로 아끼고 사랑해야 하는 고맙고 소중한 공간이지요.”

라고 말을 이었다. 그녀의 말에 몸 깊숙이 어딘가에서 신음인 듯, 환호성인 듯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동안 수많은 기준들로 가두어두고 재단하였던 나의 몸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제발 존중해 달라.’

고 외치는 간절한 외침이 들렸다.


자연스러움이 무엇인가?
바로 아름다움이다.
자기 몸의 못난 부분, 부족한 부분까지도 다 인정하고,
자기 몸에 대해서 긍지를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은 자유로운 몸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유로운 몸은 아름다운 것이다.

- 홍신자, <자유를 위한 변명>


억압되어있던 나의 몸이, 오래된 침묵을 깨고, 마음껏 소리를 내고 있었다.


자유로워지라고, 아름다워지라고.


나는 그 소리를 더 따라가 보기로 했다.

이전 02화 슬픔이 쌓여있는 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