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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May 11. 2016

수요일의 격려

'그래도 괜찮다'는 공감의 한 마디

오랜만에 후배들을 만났다. 갓 대학을 졸업한 그녀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도 그맘때 겪었던 불안하고도 우울한 궂은날들이 먹구름처럼 구물거리고 있었다.  


한 후배가 말했다.


"언니, 요샌 정말로 자존감이 바닥이에요."


성실하고 올곧은 친구였다. 야무진 그녀는 애당초 하고 싶은 일도 확실해서 관련 회사에 인턴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곳에서 최악의 어른들을 만나고 '열정페이'를 경험해야 했다. 그 후, 다시 취준생 신분으로 돌아와 매일매일 다른 이력서와 자소서를 작성하며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있다는 그녀. 번번이 어긋나는 모든 일이 다 자신의 잘못 같고 능력 부족 같아서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또 다른 후배는 자유로운 성격으로 의지가 강한 친구였다. 그녀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으고 있었다. 생각보다 그 일이 잘 맞았고 수입까지 괜찮았다고. 게다가 아르바이트하던 회사에선 정직원 제의를 건넸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거절했다.


"언니, 돈이냐 하고 싶은 일이냐. 결정하는데 솔직히 돈에 마음이 흔들렸어요. 힘들더라고요."


요즘 시기에 수입과 복지가 안정된 자리를 마다한다는 건, 누군가는 이해 못 할 결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괜찮다며 등을 두드려주었다. 손홍규 작가의 산문 속 한 구절을 떠올렸다.


'어느 날인가는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른 채 눈 사이로 난 길을 묵묵히 걷는 흑인 청년을 보았다. 나는 그 청년의 상념이 부러웠다. 청년이란 생각에 잠기는 것만으로도 숭고해질 수 있는 존재다.'


내 눈에도 그랬다. 불투명한 저 멀리를 바라보며 복잡한 상념에 빠진 그녀들이, 나에겐 무척이나 숭고해 보였다.


돈일까, 사명감일까. 이 길일까, 저 길일까. 지금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까. 몇 년 후엔 어떤 모습일까. 아아. 나는 어떻게 살아야만 할까.


가만히 머무르지 않고, 이리저리 부딪치며 끊임없이 생각하는 그녀들. 내 앞에 앉아있는 그녀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취업준비생이 아니라, 진지하게 삶을 고민하는 숭고한 청년들이었다.


그녀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나는 존중해주고 싶었다. 어떤 이야기든 달게 들어주고 싶었다. 불안한 미래와 차가운 현실, 곪아버린 열등감과 위태로운 자존감을 간절히 껴안은 채 걸어가는 그녀들의 등을 토닥여주고 싶었다.


내가 그녀들이었을 때, 스물 중반의 나에겐, 세상이 원래 다 그래. 그러니 이래라 저래라 늘어놓는 어른이 아니라, 귀 기울여 들어주고 격려해줄 어른이 필요했다.


긴 수다의 끝. 그제야 찾은 미소로 까륵까륵 웃으며 돌아가는 후배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무너지고 뒤엉키는 그녀들의 마음속엔 이미 어떤 답이 정해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어떡하죠? 괜찮을까요?' 묻는 그녀들의 불안한 물음에는, '그래도 괜찮다.'는 공감의 한 마디가 필요한 게 아닐까.


그래도 괜찮다는 말.

남들과 다른 길을 가도 괜찮아. 부모님이 반대해도 괜찮아. 돈을 좀 못 벌어도 괜찮아. 중간에 그만둬도 괜찮아. 이 길이 아니라면 방향을 틀어도 괜찮아. 그러니까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도 괜찮아.


나는 다만 공감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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