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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Jun 04. 2017

일요일의 램프

매일 밤 찾아오는 램프의 요정

태어난 지 오십일도 안 된 우리 집 쌍둥이 아가들은 새벽에도 자주 깨고 울고 먹는다. 그때 너무 밝은 빛을 켜면 아가들에게도, 잠자는 다른 가족에게도 방해가 된다. 그래서 손바닥만 한 휴대용 수유 램프를 하나 샀다. 손으로 톡 하고 두드리면 은은한 빛이 켜지는 동그란 램프. 빛이 참 은은하고 아늑해서 나는 그걸 아가들 곁에 새벽까지 켜두곤 했다.


야근이 잦은 남편은 늘 아가들이 잠든 후에야 집에 왔다. 심지어 주말에도. 나는 그런 남편이 안쓰러웠다. 혼자 아가들을 돌봐야 하는 나도 힘들긴 하지만, 보고 싶어도 항상 아가들 자는 얼굴만 봐야 하는 남편은 얼마나 힘들까. 아가들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다. 빙그레 배냇짓하고 하암 하품하고 옹알옹알 거리는 그 예쁜 모습을 볼 수 없다니 얼마나 아쉬울까 싶었다.


그날도 남편은 자정이 넘어서 집에 왔다. 살금살금 아가들 잠든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그날 찍은 아가들 사진과 동영상을 봤다. '오빠, 착하게도 낮잠을 한참이나 잤어. 자다가 혼자 웃는 거 봐. 배고프다고 우는데 너무 귀여운 거 있지. 전에 컸던 옷이 이제 이렇게 잘 맞아. 방긋방긋 웃기도 잘하지. 기분이 좋았나 봐.' 남편은 사진을 보고 또 보면서 아빠 미소를 지었다. 남편에게 물었다.


"아가들 얼굴 못 봐서 힘들지 않아?"

"있잖아, 저 램프 참 잘 산 거 같아."


대답 대신 뜬금없는 램프 얘기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남편이 말했다.


"그거 알아? 나 안방에 옷 갈아입으러 갈 때마다 항상 아가들 얼굴 봐. 둘이 나란히 누워서 자고 있으면 램프로 얼굴 한 번씩 비춰보면서, 잠자는 얼굴을 한참 동안 봐. 요놈들 잘 자고 있나. 오늘은 얼마나 통통해졌나. 좋은 꿈 꾸고 있나. 아, 진짜 너무너무 예쁘다. 하고. 그러기에 딱 적당한 빛이야. 저 램프 정말 잘 산 거 같아."



나는 램프를 든 남편을 상상했다. 살금살금 방문을 열고 들어가 손바닥 위에 램프를 올려두는 남편. 아가들이 깰세라 조심스럽게 손을 뻗으면 남편의 손바닥 사이로 은은한 빛이 퍼지고, 그 아래 세상모르게 자고 있는 아가들의 얼굴이 보이겠지. 그리고 남편은 지금처럼 웃고 있겠지. 아가들 보드라운 볼을 차마 만지지도 못하고 한참 동안 바라만 보는 남편. 행복한데 왠지 모르게 짠한 풍경이었다.


"아빠들은 그래서 그랬구나 싶어. 어렸을 때, 자고 있으면 밤늦게 아빠가 얼굴에 뽀뽀하고 뺨 비비는 게 그렇게 싫었는데. 그게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구나."


"그러게. 오빠도 이제 아빠가 되는 거네. 여름이면 아이스크림 사 오고, 겨울이면 호떡 사 오고 그런 아빠가 되는 거네."


우리 남편, 아빠가 다 됐네. 고개를 돌리니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아빠의 얼굴이 있었다. 오늘 하루 고단함이 묻어있는 남편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가만히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나는 가만히 불러봤다.


"램프의 요정."


남편이 돌아본다. 그리고 웃는다.


"정말이네. 나 램프의 요정이네."


아마도 우리 집 램프는 꽤 오랫동안 빛날 거 같다. 아가들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 그럴수록 남편은 힘이 세져야 할 아빠가 되었으니.


그 언젠가의 깜깜한 밤에도 램프는 빛날 것이다. 잠든 아가들 곁에 선 램프의 요정은 허리를 구부리며 속삭이겠지.


'잘 자라, 우리 아가.'


나는 그 따스한 풍경 속의 빛이 되어 세 사람 다 꼬옥 안아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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