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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Nov 20. 2017

손톱을 깎다가

손톱 깎던 밤

일주일마다 아기 손톱을 자른다. 아기 손톱 자르는 일은 어렵다. 아기를 작은 의자에 앉히고, 고 앞에 쪼그려 앉아 작은 손을 꼭 쥐고 손톱을 잘라준다. 코딱지처럼 작고 종잇장처럼 여린 아기의 손톱.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아기를 달래고 어르며 손톱을 자르다 보면 얼마나 긴장했는지 온몸에 식은땀이 흥건하다.


나의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아기의 엄지손톱을 자르다가 궁금해졌다. 나는 언제부터 스스로 제 손톱 자르기 시작했을까. 아무리 빨라도 열 살 쯤이지 않을까. 그전까지 일주일마다 한 번씩, 십 년 동안 내 손톱을 잘라주었던 사람은 엄마였다. 나는 아주 사소한 것조차 스스로 살아낸 것이 하나도 없다. 내 살과 뼈, 손톱 발톱까지 나는 엄마의 노고를 먹고 자랐다.


이제는 내가 엄마가 되어 아기들의 손톱 발톱을 잘라준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코를 파주고 머리를 감겨주고 입히고 먹이고 재운다. 나의 엄마가 고생했던 시간이 쪼그려 앉은 내 등 위로 차곡차곡 업힌다. 그 고된 무게에 웅크리고 웅크리다가 나는 두 아이를 품에 안는다. 그럼에도 너희들.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얼마나 고마운지. 이대로 자라주렴. 살아주렴. 쌀알 같은 아기 손톱이 자잘히 모였다. 자른 손톱마저 아까워 네모난 티슈에 모아 곱게 접어 버렸다.


밤. 방바닥에 앉아 나의 손톱을 깎았다. 달깍달깍. 어른 손톱이 모인다. 서로 부딪치면 톡 톡 소리가 날 것 같다. 단단해졌구나. 나 이렇게나 단단하게 잘 자라왔구나. 살아왔구나.


빙긋이 웃다가 올려다본 밤하늘에는 손톱달이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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