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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Jan 10. 2018

밤의 오프닝

굿나잇. 좋은 밤이 시작되었네요.

날이 추울 때 우리가 어깨를 웅크리는 건 몸의 면적을 가장 작게 만들어서 추위를 견디려 하기 때문입니다. 외로울 때도 사람들은 추울 때와 같은 동작을 하죠. 결국 우리가 가장 절실할 때 필요한 건, 크고 넓은 것이 아니라 작고 왜소하고 구석진 것 안에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추운 것과 외로운 것에 반응하는 방식이 비슷한 것처럼 추위와 외로움을 치유하는 방법 또한 비슷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몸과 마음에 온기를 불러오는 것. 내 안에 따뜻한 기운을 전해주고 기대게 해주는 것. 가장 단순하고 기본적인 것에 자꾸 생각이 닿는 무렵입니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 KBS <세상의 모든 음악> 11월 14일 오프닝


라디오 오프닝을 좋아한다. 굿모닝, 굿애프터눈, 굿나잇처럼. 하루의 적당한 순간마다 기분 좋게 건네는 안부 인사 같아서. 힘차거나 즐겁거나 편안하거나 따뜻하거나. 뻔한 내용이라 해도 언제 들어도 좋다. 하긴 인사라는 게 원래 그런 것 아닐까.

얼마 전에 받아 적어두었던 오프닝이 있었다. 저녁 6시에 들었던 라디오 오프닝으로 웅크린 자세에 관한 이야기였다. 추위와 외로움에 반응하는 동작이 같은 것처럼 우리가 가장 절실할 때 필요한 건, 작고 왜소하고 구석진 것 안에 있는 거라고. 이어서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위로의 말과 함께 라디오가 시작되었다. 나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었다.

아마도 이 오프닝이 와닿았던 건, 내 마음 어딘가 찬바람이 불었기 때문일 거다. 나도 미처 몰랐던 마음이었는데, 참으로 적절한 인사였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그날 저녁을 보냈던 것 같다.

지금은 새벽. 잠자리에 누웠다가 일어나 노트를 끄적이고 있다. 한참을 뒤척여도 잠들 수 없었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잊고 있었던 걱정들이 하나둘 차올라 기어코 불안해지려는 참이었다.

잠들기 전에 하는 생각은 대부분 쓸데없는 것들이다. 아침이 오면 새하얗게 잊어버릴 걱정거리거나, 다시 떠올려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상념 같은 것들. 그런 쓸데없는 것들로 불안해질 바에 나는 깨어있기로 했다. 노래를 들으며 이런 시시콜콜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어느새 곁에 좋은 밤이 와있었다.

밤이 좋아서. 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처럼 깨어있을 누군가에게 밤의 오프닝을 전해야겠다고. 당신 거기 있군요. 반짝. 이름 모를 당신에게 문자를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반짝.


좋은 밤이에요. 온전히 혼자이기 좋은 밤, 무엇이라도 시작하기 좋은 밤. 지금이 당신에겐 하루의 끝이 아닌 시작이었음 해요. 가까이에서 창문을 열수 있다면 좋을 텐데. 밖에 눈이 내리고 있거든요. 조용히 눈이 내려요.  

굿나잇. 당신에겐 굿나잇이 '잘 자'가 아닌 '좋은 밤'으로 전해지길 바라며.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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