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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Nov 01. 2018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사람

오늘도 만났다. 만나서 좋았다.

마쓰우라 야타로의 <안녕은 작은 목소리로>에서 '한 달에 한 번만 만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다. 한적한 카페에서 저녁 여섯 시쯤, 한 달에 한 번만 만나는 사람. 만나면 그다지 할 이야기도 없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지 함께 시간을 보낼 뿐인 사람. 그런데도 그 시간이 허전하지 않고 따스하게 느껴져서 기분 좋은 사람. 작가에게는 그런 사람이 있다고 했다. 나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다. 나의 남동생.    


우리 남매는 이십 대 시절 함께 살았다. 생각해보면 좋았던 생활 중 하나는, 매일 집에서 얼굴을 보면서도 자주 둘이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었다. 카페에서 각자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거나, 맛있는 디저트를 먹거나 사진을 찍거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멍하니 앉아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가족이기에 가능했던 허전하지 않은 편안함과 기분 좋은 거리감이 있었다. 그저 함께 있을 뿐이지만 따스했다.


주변에서는 그런 우리 남매를 사이가 좋다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정말로 우리는 사이가 좋았다. 그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리 남매는 십 대 시절 떨어져 살았다. 아마도 가장 힘들고 예민하고 외로웠던 시기에 우리는 오래 떨어져 살았다. 어렸을 때를 떠올리면 동생과 하루 종일 놀았던 기억밖에 없는데, 십 대 시절을 떠올리면 동생과 함께한 기억이 거의 없다. 아마도 서로가 부재했던 그 시간이 우리를 애틋하고 단단하게 만들어  것 같다. 늘 그렇다. 소중한 건 곁에 있을 때 알지 못한다.


그렇게 함께 살다가 결혼하면서 남동생과 헤어졌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살던 집에서 내 짐을 가지고 나오던 날, 나는 생각지도 못하게 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동생은 그런 나를 놀리며 안아주었다.

그 후로 동생은 일주일마다 나를 만나러 왔다. 우리는 밖에서 저녁을 먹고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다지 할 얘기도 없고,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그런 편안한 시간들이었다.


이제는 조카들이 있어서 그런 만남은 힘들다. 하지만 남동생은 여전히 일주일마다 나를 만나러 온다. 동생은 아이들이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목욕을 시켜주었다. 집에서 같이 밥 먹고 조카들 씻겨주고 놀아주고, 아이들이 잠들면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커피를 테이크 아웃해 온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커피를 홀짝이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동생은 나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사람이다.  


새삼 깨닫는다. 동생이 나에게 나눠준 것이 아주, 아주 소중했음을. 동생이 내게 준 것은 시간이었다. 십여 년 동안 천천히 성실히 쌓인 우리의 시간.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은 기억이 되고, 기억은 추억이 되고, 추억은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랑이 되었다. 가족이기에 가능하지만, 가족이라도 쉽게 내어줄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안다.


오늘도 일주일만에 동생을 만났다. 별로 특별할 것 없는 늘 그런 만남이었다. 하지만 만나서 좋았다. 고마웠다. 나는 오래도록 동생이,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나의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suri.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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