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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Feb 09. 2019

겨울밤

한 편의 시 같은, 그런 밤

겨울밤. 자정 넘어 집으로 걸어가는 길.


신호등을 기다리다가 낡은 자판기 옆에서 인형 뽑기 중인 택시기사를 만났다. 한 손에는 자판기 커피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인형 뽑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길가에 세워둔 택시가 깜박 깜박 쉬는 동안 셔츠 차 아저씨는 허탕만 쳤다. 날씨가 추울 텐데, 커피가 식을 텐데... 그래도 이 시간이 즐거운지 아저씨 얼굴이 밝다. 밤새 까만 밤을 달릴 노란 택시. 무사 운전하기를 바랐다.


골목길에서 전동휠체어를 탄 할머니를 만났다. 발 밑에 폐지가 쌓여있었다. 낡은 기계음을 내며 지나가는 전동휠체어. 꽁무니에 인형 하나가 달랑거린다. 너무 어울리지 않는 분홍색 토끼인형.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것이리라 짐작했다.


좀 전에 인형 뽑기를 하던 택시기사가 떠올랐다. 뽑은 인형을 어디에 두려 했을까. 아마도 운전대 곁이나 현관 앞, 아니면 딸애에게 선물했을지도 모르겠다. 할머니에게도 인형을 선물해줄 가족이 있을 것이다. 매일 타고 다니는 전동휠체어에 달아둘 만큼 소중한 누군가가.


아파트 입구에 들어섰다. 쓰레기통 구석에 고양이 한 마리가 자고 있다. 자세히 보니 몸을 동그랗게 말고 새끼를 품고 있다. 고양이들 깰 새라 조용조용 걸었다. 오늘 밤도 무사히 잘 자거라.


추워도 걸어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오는 길에 누군가의 아버지와 어머니, 어미 고양이를 만났다. 부모들의 밤을 보았다.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밤이었다. 마치 한 편의 시 같은, 그런 밤이었다.





안녕하세요. 고수리입니다. 오늘은 작은 메시지 하나 보탭니다. 곧 출간될 책 작업으로 전처럼 브런치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어요. 댓글로 메일로 안부 물어봐주시는 분들 고맙습니다. 모두 답하지 못하지만 그 마음들 깊이 감사히 새겨두고 있어요. 잘 지내나요? 모두에게 안부를 묻고 싶은 밤입니다. 아직 추운 겨울, 우리 모두 잘 지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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