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율희 <먹고 마시고 그릇하다>
모든 찻잔은 나를 향한다. 무언가 해야만 하는 일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 차를 불어 마시며 잠시 나 자신의 모습을 본다. 나 스스로를 먼저 살피는 시간. 그 시간이 끝나야만 잔에서 시선을 거두어 내 앞의 상대방에게 눈을 옮길 수 있다. 결국 우선순위는 나다. 자신이다. 온 세포 하나하나가 잠시 잠깐 모두 나를 향한다. 찻잔이 좋고, 차를 마시는 시간이 소중한 건 결국 나를 향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 김율희 <먹고 마시고 그릇하다> 52p
'그 집 밥그릇이 몇 개인 것까지 안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그릇이란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만 나눌 수 있는 아주 내밀한 취향이다. 애초에 누군가에게 보이고자 들인 물건이 아니니 나의 찬장은 오직 내가 좋아하는 그릇으로만 가득하다. 이 컬렉션의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이 그릇들과 더불어 일상을 공들여 살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그릇에 좋아하는 음식을 담아 음미하며 한순간 한순간 정성을 다하고 싶다. 정리할 것이 없는 삶을 살기보다는, 내 물건들을 정리하며 한 번 더 나 자신을 마주하고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다. 대단할 것 없는 나일지라도 고단한 일상이더라도, 기꺼이.
- '작가의 말' 중에서
유명하고 화려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유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면서 나의 꿈은 안목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물의 가치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은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인 능력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또 다른 차원이다. 좋은 옷, 좋은 책, 좋은 소품, 좋은 그림, 나아가 좋은 사람을 알아채는 것은 유행을 좇아 될 일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도 아니다. 세상사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고 역사와 철학, 예술을 멀리하지 않으며 새로운 것을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제법 근사한 삶이란 그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109p
나를 귀하게 여기는 일에도 '나 하나부터'라는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생활의 우선순위는 나와 가장 가까운 것에 두어야 한다. 신선한 재료로 만든 음식, 천연 소재의 속옷, 보드라운 침구, 향이 좋은 차와 내용이 알찬 책, 알맹이가 먼저고, 그를 담는 그릇과 가구는 그다음이다. 이 물건들이 찾기 쉽고 서로 조화롭게 정리된 집이 그다음, 그리고 정말 집 밖으로 나가서야 진가를 발휘하는 옷과 액세서리 등은 가장 마지막이다. 좀 외지고 작은 집에 차림은 좀 부스스하더라도 빵 냄새와 차향기가 가득한 집에 있는 누군가는 꽤 매력적이지 않나. -14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