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다만 모든 이들의 상처가 될 뿐이다

앤드루 포터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by 고수리

진실은 닫힌 문 뒤에 있을 때, 어두운 침실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고 제일 편안하게 느끼는 부분이다. 우리는 우리의 연인들에게 이런 비밀을 말해야 할까, 감춰야 할까.


... 죄책감은 우리가 우리의 연인들에게 이런 비밀들을, 이런 진실들을 말하는 이유다. 이것은 결국 이기적인 행동이며, 그 이면에는 우리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 어떻게든 일말의 죄의식을 덜어줄 수 있으리라는 추정이 숨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않다. 죄의식은 자초하여 입는 모든 상처들이 그러하듯 언제까지나 영원하며, 행동 그 자체만큼 생생해진다. 그것을 밝히는 행위로 인해, 그것은 다만 모든 이들의 상처가 될 뿐이다. 하여 나는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그 역시 내게 그러했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 앤드루 포터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129p


유명한 책 말고 나만 알고 싶은 좋은 책을 추천해달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때 추천해 준 앤드루 포터 소설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8년 전에 이 책을 샀다. 스물일곱의 나. 책 속 동명 단편소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읽고서, 몇 살쯤 훌쩍 나이 들어 버린 기분을 느꼈었다.


그 순간 그들은 나보다 한참 어려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이상한 순간이었다. 결국, 어쩌면 몇 시간 동안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결국에 나는 떠나야 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 131p


오늘 다시 펼쳐본 책은 노랗게 변색되어 있었고 먼지 머금은 종이 냄새가 났다. 8년 간 나의 일터와 자취방과 신혼집을 함께 다닌 책. 우리 같이 나이 들었구나. 그리고 다시 읽어본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더 좋은 소설이 되어 있었다. 결국, 누군가를 떠났고 어딘가를 떠나온 나에게는 책 한 권이 남았다.


절판되어 구하지 못했던 이 책이 어제 문학동네에서 재출간되었다. 이 책을 읽어본다면, 나만 알고 싶었던, 그 정도로 아끼고 좋아했던 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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