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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Jun 10. 2019

살고 싶어서 글을 씁니다

나는 왜 글을 쓰는 걸까

어떤 소녀가 쓴 글을 읽었다.

 

아빠는 4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아빠는 저를 끔찍이 아껴주셨죠. 엄마는 늘 제가 좋아하는 음식을 해주셨어요. 엄마도 돌아가신 아빠를 무척이나 그리워하셨던 것 같아요. 어느 날 엄마가 병이 들었어요. 저는 병원이 있는 읍내로 엄마를 모시고 갔어요. 돈을 다 썼지만, 엄마는 계속 아팠어요. 너무 아파서 일어나시질 못했습니다. 저는 ‘엄마, 제가 만든 음식 드시고 어서 일어나세요. 일어나시면 또 맛있는 걸 해드릴게요’라고 했어요. 그렇지만 엄마는 점점 더 아팠습니다. 저는 누워 있는 엄마의 손을 씻어 드렸어요. 엄마는 ‘얘야, 집에 가자꾸나. 여기가 편치 않구나’라고 하셨습니다. 엄마와 저는 집으로 돌아왔어요. 며칠 뒤 저는 음식을 만들고 엄마를 불렀어요. 대답이 없었어요. 엄마는 이미 하늘나라로 가셨던 거예요. 교과서에서는 대만에 일월담 호수가 있다고 해요. 호수의 물은 엄마를 그리워하는 딸의 눈물로 가득 채워져 있다고 했어요.

- 무쿠이우무 <눈물>, 한겨레 기사에서 발췌


중국 쓰촨성 오지 마을에 살고 있는 열두 살 무쿠이우무. 소녀는 엄마가 돌아가신 이야기를 짧은 글로 썼다. 이 글은 교실 벽에 걸려 있다가 자원봉사를 하던 교사가 인터넷에 올리면서 알려졌다. 후에 널리 퍼져 ‘세상에서 가장 슬픈 수필’로 회자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소수민족 이족(彛族) 언어를 쓰는 무쿠이우무에게 중국어와 한자는 외국어와 다름없다. 소녀는 서툰 언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더듬더듬 써 내려갔다. 운이 좋게도 나는 중국어를 조금 할 줄 알아서 원문 그대로 읽을 수 있었다. 미사여구 하나 없는 깨끗한 문장으로 쓰여진 글. 짧은 글 속에 소녀의 그리움과 버거움, 슬픔과 삶이 다 들어 있었다.


무쿠이우무의 글은 얼마간 나를 따라다녔다. 머릿속에 머물다가 무언가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말간 얼굴을 내밀었다. 한동안 나는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나의 글이 길어지고 있었다. 늘어나는 미사여구와 변명들로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싶었던 나의 진심은 무엇이었을까.


나에게 글쓰기는 행복하지만 두려운 일이었다. 사적인 비밀과 생각, 삶의 일부까지도 들추어 내보이는 일. 맨얼굴로 밖에 나서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과의 자리에서 내 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일부러 화제를 돌리거나 모호하게 말을 얼버무리곤 했다. 나는 내가 쓴 글처럼 그런 사람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그런 사람은 아니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쓴 글로 나를 판단하면 어쩌지. 글과는 다른 내 모습에 실망하면 어쩌지. 두려웠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 비난할 여지가 있는 글에는 자기검열이 심해졌고 솔직한 글쓰기를 주저하게 됐다. 마음이 힘든 날이 많아졌다. 그때 무쿠이우무의 글을 만났다.


왜 글을 쓰기 시작했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글이야 줄곧 써왔지만 진짜 글을 쓰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스무 살이 되고 나서부터였다.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처음 나 자신을 책임지게 된 순간부터 나는 솔직한 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어둡고 슬프고 아픈 이야기들을 공개적으로 한풀이라도 하듯이 엄청나게 적어 내려갔다.


그동안 숨겨왔던 내 상처를 어떻게든 처리해야 살 것 같았고, 이제는 아무한테도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과잉방어이기도 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니까 다가오지 마. 건드리지 마’ 하고. 젊은 날의 자기연민과 치기가 나를 더욱더 뾰족하게 만들었다. 쓰는 마음처럼 글도 그랬다. 글이 참 아팠다. 그렇게도 아프게 글을 쓴 이유, 가시 돋친 나를 드러냈던 이유는 ‘살고 싶어서’였다. 나는 내 모습으로 나답게 제대로 살고 싶었다.


그 시기를 지나온 지금. 나는 나에게 묻는다. 나는 왜 글을 쓰는 걸까. 두렵다 힘들다 하면서도 왜 계속해서 글을 쓰려는 걸까. 질문을 곱씹어보다가 돌아봤다. 글쓰기가 전혀 두렵지 않고 힘들지 않았던 때를. 그때 나는, 솔직하지 않았다. 자유롭지 않았다. 아팠지만 아프지 않은 척했고, 나빴지만 나쁘지 않은 척했다. 잘 웃고 잘 따르고 잘 지내는 소녀. 그러나 그건 내가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쓴 글에는 진짜 내 이야기가 없었다. 솔직하지 않은 글쓰기는 어렵지 않았다. 딱히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니니까.


그러니까 용기. 무쿠이우무의 글이 나를 따라다녔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솔직하게, 용기 있게 쓰라고. 삶의 말로 나의 이야기를 쓰라고. 소녀의 글은 나를 붙잡았다.

일러스트 (c) 수명


한때 아프게 글 쓰던 시기를 보내며 알게 된 것이 있다. 모든 이야기는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것. 미워하고 좋아했던 슬퍼하고 행복했던 내가, 진짜 나였다. 나빴고 아팠던 이야기도 모두 나의 것,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이었다. 그리고 그런 글을 읽고 끄덕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의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비로소 내 슬픔은 따뜻해졌고 내 아픔은 빨간약이 되었다.


우리 모두에게는 고유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나의 이야기를 꾸준히 쓰다 보면 제 삶에 너그러운 사람이 된다. 나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내고 나면 바깥세상과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름 없는 존재들을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는 따뜻한 힘이 생긴다. 내가 글을 쓰며 배운 것들이다.


왜 글을 쓰냐는 질문에 나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살고 싶어서’라고 대답하고 싶다. 세수를 하고 밥을 짓고 청소를 하고 아이를 돌보고 돈을 벌고 먹고 자고 숨 쉬며 살아가는 동안에도 나는 살고 싶어서. 가치 있게 살고 싶어서 글을 쓴다. 여전히 두려운 마음으로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지만, 그저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나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다. 두렵지만 행복한 일이다. 솔직한 이야기를, 선명한 이야기를, 사는 이야기를 계속 쓰고 싶다. 무쿠이우무의 글이 내 마음을 붙잡았듯이 내 글도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다면 좋겠다. 만지고 쓰다듬고 가만히 붙잡아 위로해주는, 그런 손길 같은 글로.


어떠한 편견도 없이 무쿠이우무의 글을 읽었던 사람들에게 이제 소녀의 진짜 이야기를 전한다. 중국의 오지 마을에 살고 있는 열두 살 무쿠이우무는 가난하다. 이제는 아빠도 엄마도 없는 고아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고아인 조카와 함께 살고 있다. 돼지를 치고 감자밭을 일구며 조부모를 모시고 산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열여섯 살과 열다섯 살 언니, 오빠는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났다. 그리고 열 살, 다섯 살짜리 남동생들은 자선단체가 주선한 학교에 다니려고 160킬로미터 떨어진 시창현으로 떠났다.


무쿠이우무는 앞으로 대단한 행운을 만나지 않는 이상 계속 그렇게 살 것이다. 그럼에도 이 소녀는 단단히 버티고 오늘 하루도 잘 살아낼 거라고 나는 믿는다. 자신의 상처를 담담히 써 내려간 용기와 슬픔은 일월담 호수에 흘려보내고 다시 살아가는 의연함이 그걸 증명한다. 눈물은 넣어두고 돼지를 치고 감자밭을 일구며 다시 살아갈 열두 살 무쿠이우무. 나는 소녀가 계속 글을 썼으면 좋겠다. 무쿠이우무는 나에게 작가였다. 내가 그렇게나 되고 싶었던 진짜 작가였다.







안녕하세요. 고수리입니다.

 

이 매거진은 저의 첫 위클리 매거진 <다정한 날들>과 이어져 있습니다. 두 개의 위클리 매거진에 실린 글 일부가 초고가 되어 책이 완성되었지요. 책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 만다>에는 이런 문장이 있어요. “외롭다 힘들다 그러는 사이에도 우리는 여기까지 흘러왔다.” 그 시간들을 흘러온 지금, 저에게 남은 건 뭘까 생각해봤어요. 사람, 그리고 사랑이더군요.


엄마가 된 서른넷 저에게는 ‘사랑’이 다르게 느껴져요. 세상 곳곳에서 사랑을 발견하거든요. 글을 쓰면서 나름대로 사랑에 대해 재정의 해보았던 것 같아요. 그걸 책을 통해 전하고 싶었어요.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야 만다고요.


이번 책을 쓰는 동안 특히 타인의 삶에 대해 많이 생각했습니다. 우리 곁에 살아가지만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삶을 궁금해하고 이해해보려 노력했던 것 같아요. 동사무소에서 만난 장애인 직원, 폐지 모으는 할머니, 혼자 컵라면 먹는 아이, 카페에서 만난 취업준비생,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 지하철 노동자들, 시 쓰는 농부. 그런 사람들 이야기를 쓰는 동안 영화 <타인의 삶>에서 ‘선한 사람을 위한 소나타’를 들으며 울던 HGW XX/7이 된 것 같았어요. 어째서 나는 그런 존재들만 바라보게 되는지, 그때마다 왜 그렇게 먹먹하고 뭉클했는지 더듬어보았지요.


글 쓰며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런 눈을 가져서 다행이라고. 저는 앞으로도 선한 사람들을 위해 글 쓰고 싶습니다. 작은 것들을 발견하고 쓸 수 있기를 바라요.


두 번째 위클리 매거진이자, 두 번째 책인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를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틈틈이 빠듯하게 글 쓸 수 있는 환경 탓에, 댓글과 메일에 답해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하지만 남겨주신 모든 이야기들 소중히 읽고 새기고 간직하고 있어요. 덕분에 용기얻어 계속 씁니다.

 

부족한 글임에도 따뜻하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모두에게 사랑과 용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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