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모르는 사람을 울려버린 적이 있다. 생일 케이크를 사려고 들른 베이커리 카페는 북적거렸다. 점원들은 분주하게 빵을 포장하고 커피를 내렸다. 무덥고 바쁘고 시끄럽고 답답한 여름. 위생모와 마스크와 장갑까지 착용한 점원들은 눈만 빼꼼 보여선지 더욱이 무뚝뚝해 보였다. 그날따라 나는 짐이 많았기에 오른쪽 어깨에는 무거운 가방을, 왼손에는 먼저 나온 커다란 케이크 상자를 들고 있었다. “커피 나왔습니다.” 점원 안내에 오른손으로 커피를 받아 들며 말했다. “죄송해요. 제가 지금 쓸 수 있는 팔이 하나밖에 없어서요. 한 손으로 받아 갈게요.”
그때였다. 점원이 내 눈을 마주 보았다. 갑자기 왈칵, 눈물이 고이는 게 보였다. 그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말했다. “이런 말은 처음 들어봤어요. 감사합니다.” 나도 그만 뭉클해져 꾸벅 목례하고 돌아섰다. 우리가 나눈 눈 맞춤은 찰나였지만, 밖을 나서자마자 달려드는 무더위도 깜빡 잊을 만큼 순한 여운을 남겼다.
울고 싶은 사람을 모르고 지나친 적도 있다. 삼청동에 예약해둔 전시를 보러 갔다가 불친절한 직원을 만났다. QR체크인과 예약 확인을 하는 내내 일부러 무안을 주는 건가 싶을 정도로, 직원은 뚝뚝한 말투에 얼굴을 잔뜩 구긴 채 내게 시선조차 두지 않았다. 따져 물을까 하다가 돌아섰지만, 불친절한 사람 때문에 기대했던 하루가 덩달아 구깃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잠시 후, 다른 직원이 종종걸음으로 전시장에 들어섰다. “괜찮으시대?” “모르겠어. 갑자기, 미안해.” “미안하긴, 얼른 가봐.” 전시장은 몹시도 조용해서 두 사람의 대화가 선명하게 들렸다. 돌봐야 할 누군가 급하게 아팠던 걸까. 직원이 서둘러 나간 문이 닫히는 소리에 쿵, 하고 깨달았다. 내가 오해했다는 걸. 그는 당혹스럽고 슬픈 마음을 애써 참아내고 있던 것이었다.
공적인 옷을 입고 지내는 일상에서도 사적인 얼굴들을 마주치곤 한다. 한여름 뙤약볕 같은 어떤 순간에는, 어쩔 수 없는 솔직한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힘겹게 숨긴 마음의 뒷면이 그늘질 때도 있다. 우리는 모두 감정을 지닌 사람이니까. 우연히 마주친 그 얼굴들을 나는 이해했을까, 오해했을까.
한낮의 광화문 거리를 걸었다. ‘올여름 할 일은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일.’ 커다란 건물 글판에 적힌 문장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마주치는 타인들에게 되도록 다정하고 싶다고. 미처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애써 읽어주고 싶다고. 모르는 사람의 그늘은 이다지도 고단하고 슬퍼서, 한여름에도 서늘하게 미안했다. 기대어 머물고픈 그늘이 유난히도 간절한 여름이었다.
8월 20일 동아일보 [관계의 재발견] 칼럼을 썼습니다. 마스크에 숨어 잘 보이지 않는 얼굴들.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어주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