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팅 업로드 직후는 늘 만족스럽고 앞으로 자주 글을 쓰자라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러나 만족감이 들어온 틈새로 잡스러운 생각들이 뒤따라 걸어 들어온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모은 다음에 글을 써야지라거나 주절주절하는 헛소리 같은 글 말고 중심이 있는 글을 써야지라는 그런 생각들. 그런 마음가짐으로 차일피일 글쓰기를 미루다 보면 지인들에게 '살아는 있냐, 글은 왜 안 쓰는 거냐'라는 우려 섞인 말을 듣기 시작하곤 하는데 그때조차 최선을 다해 뭉그적 거리곤 한다. 그러다 오늘처럼 할 일이 더럽게 없는 날이면 왠지 모르게 글을 써야겠다는 결심이 단박에 선다. 결국 지 하고 싶을 때 한다는 글을 장황하게 주절거렸다.
한동안 글을 쓰지 않고 짤막짤막하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곱씹어보다 훌훌 날려 보내는 패턴으로 살아왔다. 그럼에도 떨쳐지지 않는 것들은 일기장에 끄적거리고 빠르게 덮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진득하게 앉아서 글을 올릴 기회가 더더욱 없어졌달까-라는 또다시 변명. 변명은 뒤로하고 그동안 어떻게 지내왔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볼까 한다.
1. 영어과외
최근 주로 에너지를 쏟은 일은 영어 티칭이다.
백수매거진 주인장답게 지속 가능한 백수생활(?)을 위한 돈벌이 수단을 마련하고자 티칭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사실 살아오면서 해보고 싶은 일들 중 하나이기도 했다. 다행스럽게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 꽤 적성에 맞았다. 선생님은 사람과 소통하는 것을 좋아하고 타인을 돕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직업이라 생각한다. 처음에는 단순 맛보기로 시작하였는데 수업을 하다 보니 학생보다 내가 더 도움을 많이 받는 듯(?)하여 학생을 점차 늘리기 시작하였고 덕분에 아직까지 별 탈 없이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과외를 하며 나름 정체성 혼란을 겪게 되었으니, 백수는 백수인데 돈벌이를 하는 백수가 되었기 때문. 이러한 모순점이 한동안 주인장을 혼란에 빠뜨렸는데 이것도 글쓰기를 미룬 이유 중의 하나가 될랑가(변명 추가요).
여하튼 과거의 순수백수에서 하이브리드 백수로 탈바꿈을 하게 되어 버렸으니 이를 어찌 풀어나갈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세상에 이런 걸로 고민하는 사람은 아마 나밖에 없으리라.
다음 사전에 검색하면 나오는 백수의 정의.
(1)번의 뜻으로 백수매거진을 창간하고 탱자탱자 놀아왔는데 용돈벌이를 시작하니 하는 수 없이 (2)번으로 이동해야겠구나 싶은데 이 또한 쉽지 않다.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은 손이라- 어쩌면 내가 추구하는 가치일지도 모르겠다. 비우고 또 비우는 삶을 사는 것이 지향하는 바이기에 앞으로는 (2)번의 의미로 백수매거진을 써나갈까 합니다.
미니멀리즘과 맞아떨어지는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언제 또 순수백수로 돌아갈지 모르지요. 어찌 되었던 아마 한동안은 소박한 삶을 일구어 낼 수 있을 정도의 돈만 벌어 생활하는 '하이브리드 백수'로 살아갈 것 같습니다.
다시 티칭 이야기로 돌아가서, 코로나 바이러스로 수업은 잠정 중단된 상태. 불안, 불확실성, 불신의 기운들이 언제 마무리될까 싶지만 난세일수록 영웅이 나오고 똘똘 뭉칠 수 있는 응집력이 나오는 법. 함께 서로 배려하며 지혜롭게 헤쳐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개 백수는 고요한 집에서 열심히 타자를 두들기고 있습니다. 오래간만에 글을 쓰니 더 잘 샛길로 빠지는 기분이 들지만 어차피 나 좋자고 쓰는 글이므로 내 맘대로 써 내려갑니다.
시간이 많이 생긴 김에 수업 자료들도 많이 만들어 놓고 나 스스로도 모르는 것을 학습하는 기간으로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해야겠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가 얼마나 모르고 있었는지를 깨닫는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는 알아차리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
영어 수업 자료는 직접 만들고 주로 PPT, 워드, 유튜브 등을 활용하여 준비한다. 파워포인트 만드는 걸 좋아해서 고되게 느껴지기보다는 즐거운 놀이처럼 하는 편이다. 가끔 집중력이 낮을 때나 아무것도 하기 싫은 그런 날은 힘겹게 수업자료를 만들어야 할 때도 있지만 최대한 긍정적인 에너지를 내기 위해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하곤 한다. 이런 게 스스로 일하는 즐거움이지 않을까 싶다. 누가 시켜 서가 아닌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기에 스스로 책임지고 주도적으로 일을 이끌어나간다.
그럼에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학생들과 함께하는 시간이다. 다들 저마다의 이유나 욕구가 있어 영어 과외를 시작한다.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수업을 할 때는 에너지가 마구마구 올라오고 시간이 참 빠르게 흐른다. 평소에는 수업 장소를 이동하느라 에너지가 바닥일 때가 많은데 수업을 시작하면 어디서 온 건지 알 수 없는 힘들이 뿜뿜 넘쳐흐른다. 물론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는 다시 비활성 모드 되는 나의 저질체력.ㅎㅎ
코로나바이러스로 모든 것이 중지되었지만 나름 가능한 대안들을 알아보고 있다. 그중 하나가 화상강의인데 일단 학생과 한 번 테스트를 해봐야지 이게 어떻게 운영될 수 있을지를 알 수 있을 듯하다. 문이 하나 닫히면 한 개의 문이 열린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어찌 되었건 방법은 찾으면 있다. 그래도 대면으로 수업하는 것을 가장 선호한다. 얼른 코로나가 일단락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 기타 배우기
영어 티칭만큼 요즘 흥미를 느끼는 것이 있는데 바로 기타!
악기 배우는 게 버킷리스트였는데 정말 운 좋게도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꾸준히 기타를 배우고 있다. 여기서 꾸준히가 정말 중요한 포인트. 늘 악기를 찔끔 배우다 그만두었는데, 그러한 과거 이력이 있기에 이번에는 정말 오랫동안 차근차근 배우고 싶다.
비 오는 날에 느낌 왔으므로 급 기타 사러 가기
요즘 나의 생활은 [과외+영어공부+기타+독서+명상]정도로 매우 제한적이었다. 근데 사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바빠서 무언가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 탓에 인터넷에 글 쓰는 것도 뜸하고 사람들과 만나는 일도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일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이곳저곳 이동하며 많은 에너지를 쓰다 보니 혼자 있는 시간이 더욱 필요했던 것 같다.
기타는 작년 11월부터 배우기 시작했는데 입문용 기타도 구입하여 시간 날 때마다 연습하고 있다. 생각했던 것만큼 잘 되지는 않지만 마음을 비우고 평생 배운다는 심정으로 조금씩 해나가려 한다. 조급한 마음은 많은 것들을 그르치게 한다. 많은 실수를 저지르고 나서야 옛 어르신들이 왜 돌아가는 게 오히려 빨리 가는 길이라고 말씀하셨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3. 그 외
과외와 기타 이외에는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는 나날들이었다. 이따금 캘리그라피 원데이클래스를 열었고, 어깨가 뻑적지근하면 집에서 요가매트를 펴놓고 요가를 하곤 했다. 혼자 있는 시간은 주로 책을 읽었다. 아참 최근에 오디오북 회사에 이직한 지인 덕에 오디오북을 1년간 무료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정말 신기한 것은 삶 속에서 '아 이런 게 있으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하면 그러한 것들이 시기적절하게 나에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생각의 힘이란 것이 이런 것인가요...? 마구잡이식의 통계일지도 모르겠지만 인생을 살아오며 이렇게 덜컥 주어진 기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앞으로의 삶을 걱정하기보다는 어찌 되었건 다 잘 되리라-하는 태평한 마음가짐이 내 안에 자리 잡게 되었다. 케세라세라!
글을 쓰면 영혼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이 좋은걸 왜 그동안 안 했을까요?
(이래 놓고 또 몇 달 후 돌아온다는 게 함정)
최근 집에만 있으면서 벌써부터 온몸이 근질거리고 심심하지만 앞으로의 방콕 기간 동안 사부작 거리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봐야겠다. 빠른 시일 내로 '퇴사 후, 무엇을 하였나?' 시리즈 글을 업데이트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