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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숲 Sep 10. 2020

혹시 당신도 사랑이 어려운가요?

사랑의 시작이 어려운 이들에게

꽃을 선물하는 사람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다발을 고 있는 사람의 미묘한 과 풋풋함이 이제 막 꽃을 피우려 하는 꽃봉오리 같다. 결이 곱고 수줍다. 걸음이 멈춘 곳에는 그를 기다리는 연인이 있다. 꽃을 건네받은 그녀 웃는다. 활짝 핀 해바라기처럼. 조로웠던 무채색 일상이 환하게 물든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꽤나 즐거워서, 꽃을 들고 있는 사람을 보면 자연스레 시선이 간다.


그러다 문득 '아, 내가 저런 표정을 지은적이 언제였더라'라는 생각이 든다. 먼지 쌓인 옛 기억들을 뒤적리지만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무채색 일상으로 복귀한다. 오늘도 해야 할 일이 빼곡히 쌓여있기에, 허공에 펼쳐진 생각을 접고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올해의 버킷리스트에도
'미췬 사랑하기'가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우습지만 몇 년 전부터 친구들에게 '나는야 엄청난 사랑을 하고야 말 거야!'라고 떠벌리고 다녔다. 진심으로 그런 사랑을 하고싶어서였기도 했지만, 그렇게 말이라도 하고 다녀야 뭐라도 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1월이 올 때마다 올해의 목표를 써 내려가곤 하는데, '미췬 사랑하기'는  Top 3 중 한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문제는 이 항목이 달성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자꾸만 다음 해로 이월된다는 것이다. 왜냐? 목표만 거창했지 그에 따르는 실행력 '0'에 가까울 정도로 빈약했기 때문이다. 매사 효율성을 부르짖는 내가 왜 사랑 카테고리에 있어서는 이렇게 소극적인 걸까. 지지부진한 결과는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연말이 되면 쫓기듯 부랴부랴 몇 번의 소개팅을 하고, '역시 운명의 짝 없나 봐'라는 한탄으로 얼렁뚱땅 한 해를 마무리한 게 몇 년째인지.


그러다 코로나라는 악재까지 겹쳐버렸다.


소극적인 노력조차 올스탑. 전력투구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그 반대로 행동하고 있으니 이래도 되는 건가 싶다. 불안한 마음이 보글보글. 속절없이 시간은 흘러가고. 이렇게 5년, 10년 그리고 30년이 후다닥 지나가 버린다면...? 혼자서 쓸쓸히 삶을 마감하는 새드엔딩의 드라마가 머릿속에서 돌림노래처럼 계속된다.


강아지처럼 사랑하고 싶다
온 힘을 다해, 숨김없이


수업을 하는 학생의 집에 강아지가 한 마리 있는데 여느 강아지처럼 손님을 좋아한다. 신발을 벗고 집에 들어가면 한달음에 뛰나와 꼬리를 마구 흔들며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다. 자신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 흥분 강아지를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에 이렇게나 솔직하다니. 0.1초 만에 사람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이 사랑스러운 생명체를 어찌할까요.


강아지는 상대방이 자신을 좋아할까 싫어할까
고민하지 않는다.

거절당할까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좋으면 좋다고,
또 싫으면 싫다고,
온 힘을 다해 표현한다.

자신의 마음에 솔직한 강아지처럼
그렇게 사랑하고 싶다.




사랑이란
그 사람의 마음이
보일 때까지 파내려 가야 하는 것이다


오늘도 서울 곳곳에서 도로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드릴로 우두두두 아스팔트를 부수니 그 안에 있던 포슬한 흙이 자태를 드러낸다. 단단하고 차가운 아스팔트 속에 저렇게 따뜻하고 포근한 흙이 있었다니. 바쁜 노동현장을 바라보다 문득 그것이 나의 마음처럼 느껴졌다. 두꺼운 방어막 속에 꼭꼭 숨겨놓은 취약한 나의 마음, 나의 본질.


두께의 차이일 뿐이지 우리는 모두 마음의 표면에 아스팔트를 깔아놓는다. 사랑을 시작한다는 것은 서로의 흙에 닿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흙을 덮고 있는 딱딱한 아스팔트를 부수어야 한다. 두 사람이 연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보호막을 파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게 끝까지 부숴내어야 결국 그 사람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다. 사랑이란 건 어쩌면 서로의 상처를 마주하고 보듬어주는 것이지 않을까. 허물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나 자신을 보여주는 것. 그의 세계로 섞이기 위해 자신을 보호하는 모든 것을 부수어내는 것.


아직 나의 아스팔트는 두텁게 마음을 뒤덮고 있다. 단단한 보호막은 든든하기보다는 차갑고 쓸쓸하다.


혹시 당신도 사랑이 어렵나요?


사랑에 관해 실컷 떠들어댔지만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겁쟁이가 되어버린 건지 아직도 누군가와 새로운 시작하는 것이 두렵다. 나의 취약함을 다시 마주하는 것이, 감정의 소용돌이로 곤두박질치는 것이, 무엇보다 관계의 끝을 다시 경험하는 것이 두렵다.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을 마주할 힘이 없어 계속해서 회피해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포용하게 만들 사람이 반드시 나타나리라 믿고 싶다. 아니 믿는다. 마음의 빗장을 허물고, 내면의 모든 두려움을 녹여낼 순간이 오리라 믿는다. 그때까지 고요히 내면의 깊이를 확장하며 나를 돌보고 싶다. 그의 불완전함조차 사랑할 수 있는 너른 마음이 되기를 소망하며, 오늘도 당신을 만날 미래로 한 걸음 한 걸음 정성스레 걸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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