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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숲 Aug 20. 2023

결국엔 소개팅인가


들어오는 소개팅을 쳐내 철벽녀는 이제 사라졌습니다. 비혼주의라는 오해를 받던 저 달숲은 이제 없다는 말이지요.


소녀, 오늘을 기점으로 새로이 태어났습니다!


그렇다. 비장한 각오로 소개팅을 하나 둘 받기 시작했다. 지인들은 웬일이냐며 주변에 있는 솔로 남성을 소개해 주었다.


아, 그 사이에 책 소개팅란 모임도 참석했다. 책 소개팅 프로세스는 심플하다. 큰 자루자신이 가져온 책을 넣어둔 후, 40~50분 동안 10명 남짓의 남녀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 어느 정도 대화가 무르익으면 주선자가 테이블 위에 책을 펼쳐 놓는다. 각자 잠시 고민하는 시간을 가진 다음 마음에 드는 책을 선택한다. 그리고 각각의 책 주인을 오픈하고 잠시간 1대 1 대화를 나눈다. 최종적으로 상대방이 마음에 들면 연락처를 교환하는 뭐 대충 그런 모임이었다.


모임에 앞서 어떤 책을 가져가야 하나 민을 할 법도 하건만 순간적인 직감에 의존하여 의사결정을 하는 성격답게 당시에 읽고 있던 책을 가져가기로 했다. 문제는 그 책이 ‘면도날’이었다는 것. 지금 생각해 보면 소개팅에 가져갈만한 책은 아니었지만 당시에는 꽤나 서머싯 몸의 소설에 심취해 있던 터라 이 책을 선택한 사람이라면 대화가 잘 통하지 않을까 싶었다. 결론적으로 ‘면도날’을 선택한 하얀 피부의 남성은 나와는 인연이 아니었지만 책 제목은 마음에 들었던 걸로.


흥미로운 점은 모임에 참석한 다른 남성이 쌩뚱맞게 데이트를 신청했다는 것이다. 인생의 묘미는 역시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서 온다.


그래, 오케이. 그 제안받아주지. 왜냐하면 난 이제 막 자유연애 시장에 발을 담근 의욕이 철철 넘치는 여성이니까! 


그때는 술을 즐겨 마실 때라(지금은 술을 끊었다) 더운 여름밤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그와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대화를 나눌수록 우리 둘 소름 끼칠 만큼 닮은 점이 많다는 걸 발견했고, 어쩐지 대화를 나눌수록 그에게 빠져들기보다는 피로도가 켜켜이 쌓이는 기분이 들다. 거울치료를 받는 느낌이랄까. 닮아도 너무 닮은 게 화근이었나 보다. 아쉽게도 초반의 톡 쏘아 올린 감정은 결국 오래가지 못했다.


그래도 이렇게 쉽게 포기할 수는 없지.(어떻게 한 결심인데!)


소개팅이 들어오면 넙죽넙죽 잘도 받았다. 소개팅을 통해 상대방을 알아가기도 했으나, 되려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아가게 되었다. 나는 이성에게 이렇게 반응하는 사람이구나, 내가 이 식으로 말하기하는구나- 만남을 거듭할수록 자신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다.


여하튼 그래서 썸에서 연인으로 이어진 인연이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는 없다고 말할 수 있겠다. 많고 많은 인연 중 대화는 그럭저럭 괜찮았던 것 같은데 잘 풀리지 않은 인연도 있었고, 대놓고 대화가 통하지 않았던 사람도 있었다. 이러나저러나 결론적으로 이 사람이다! 하는 느낌을 준 남성은 없었다. 얼른 쭉쭉 치고 나가 미래의 남편을 찾고 싶은데 꽉 막힌 인연의 터널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느낌이었달까.


그러다 어느 순간 술술 들어오던 소개팅마저 뚝 끊겼다.


나름의 노력을 했는데도 결과가 이 모양이니 나의 두 어깨가 축 처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2025년 전에 시집을 못 가면 영영 혼자 살 거란 사주아저씨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에효. 의욕적으로 노오오오력을 해도 안 되는 건가. 나의 열정으로는 역부족인 건가. 자포자기 심정으로 일상을 보내고 있을 때 사촌언니에게 예상치 못한 연락을 받았다.


“달숲아~ 혹시 소개팅할 생각 있나요?”

“YES!!!!!!!!!!!! 완전 콜!”


어쩐지 이번에는 예감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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