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오는 소개팅을 쳐내던 철벽녀는 이제 사라졌습니다. 비혼주의라는 오해를 받던 저 달숲은 이제 없다는 말이지요.
소녀, 오늘을 기점으로 새로이 태어났습니다!
그렇다. 비장한 각오로 소개팅을 하나 둘 받기 시작했다. 지인들은 웬일이냐며 주변에 있는 솔로 남성을 소개해 주었다.
아, 그 사이에 책 소개팅이란 모임도 참석했다. 책 소개팅 프로세스는 심플하다. 큰 자루에 자신이 가져온 책을 넣어둔 후, 40~50분 동안 10명 남짓의 남녀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 어느 정도 대화가 무르익으면 주선자가 테이블 위에 책을 펼쳐 놓는다. 각자 잠시 고민하는 시간을 가진 다음 마음에 드는 책을 선택한다. 그리고 각각의 책 주인을 오픈하고 잠시간 1대 1 대화를 나눈다. 최종적으로 상대방이 마음에 들면 연락처를 교환하는 뭐 대충 그런 모임이었다.
모임에 앞서 어떤 책을 가져가야 하나 고민을 할 법도 하건만 순간적인 직감에 의존하여 의사결정을 하는 성격답게 당시에 읽고 있던 책을 가져가기로 했다. 문제는 그 책이 ‘면도날’이었다는 것. 지금 생각해 보면 소개팅에 가져갈만한 책은 아니었지만 당시에는 꽤나 서머싯 몸의 소설에 심취해 있던 터라 이 책을 선택한 사람이라면 대화가 잘 통하지 않을까 싶었다. 결론적으로 ‘면도날’을 선택한 하얀 피부의 남성은 나와는 인연이 아니었지만 책 제목은 마음에 들었던 걸로.
흥미로운 점은 모임에 참석한 다른 남성이 쌩뚱맞게 데이트를 신청했다는 것이다. 인생의 묘미는 역시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서 온다.
그래, 오케이. 그 제안받아주지. 왜냐하면 난 이제 막 자유연애 시장에 발을 담근 의욕이 철철 넘치는 여성이니까!
그때는 술을 즐겨 마실 때라(지금은 술을 끊었다) 더운 여름밤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그와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대화를 나눌수록 우리 둘이 소름 끼칠 만큼 닮은 점이 많다는 걸 발견했고, 어쩐지 대화를 나눌수록 그에게 빠져들기보다는 피로도가 켜켜이 쌓이는 기분이 들었다. 거울치료를 받는 느낌이랄까. 닮아도 너무 닮은 게 화근이었나 보다. 아쉽게도 초반의 톡 쏘아 올린 감정은 결국 오래가지 못했다.
그래도 이렇게 쉽게 포기할 수는 없지.(어떻게 한 결심인데!)
소개팅이 들어오면 넙죽넙죽 잘도 받았다. 소개팅을 통해 상대방을 알아가기도 했으나, 되려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알아가게 되었다. 나는 이성에게 이렇게 반응하는 사람이구나, 내가 이런 식으로 말하기도 하는구나- 만남을 거듭할수록 자신에 대한 이해도도 깊어졌다.
여하튼 그래서 썸에서 연인으로 이어진 인연이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는 없다고 말할 수 있겠다. 많고 많은 인연 중 대화는 그럭저럭 괜찮았던 것 같은데 잘 풀리지 않은 인연도 있었고, 대놓고 대화가 통하지 않았던 사람도 있었다. 이러나저러나 결론적으로 이 사람이다! 하는 느낌을 준 남성은 없었다. 얼른 쭉쭉 치고 나가 미래의 남편을 찾고 싶은데 꽉 막힌 인연의 터널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느낌이었달까.
그러다 어느 순간 술술 들어오던 소개팅마저 뚝 끊겼다.
나름의 노력을 했는데도 결과가 이 모양이니 나의 두 어깨가 축 처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2025년 전에 시집을 못 가면 영영 혼자 살 거란 사주아저씨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에효. 의욕적으로 노오오오력을 해도 안 되는 건가. 나의 열정으로는 역부족인 건가. 자포자기 심정으로 일상을 보내고 있을 때 사촌언니에게 예상치 못한 연락을 받았다.
“달숲아~ 혹시 소개팅할 생각 있나요?”
“YES!!!!!!!!!!!! 완전 콜!”
어쩐지 이번에는 예감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