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귀여워도 '뚱뚱이'라고 놀리면 안 되는 건에 대하여
체중 측정이 있는 날이었다.
2학년 율헌이는 체중계 앞에 서기도 전에 고개부터 절레절레 저었다.
안 해요.
단호했다.
두 팔을 몸에 딱 붙인 채, 체중계 근처에도 가지 않겠다는 듯 서 있었다.
경험상 체중에 민감한 아이들은 주로 고학년이다.
보건실 오는 길에도 스트레칭을 하거나, 몸을 털며 조금이라도 체중을 덜어보려 애쓴다.
줄을 잘 서 있다가 갑자기 이탈해 팔굽혀 펴기를 하는 아이도 있다.
“체중은 저만 볼 수 있죠?”
“옷 무게는 빼주시나요?”
“어제 저녁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어요. 제발 1kg만 줄어 있기를..!”
체중계 위에 올라서서는 눈을 꼭 감고 간절한 소원을 비는 아이들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작정하고 체중 측정을 거부하는 아이는 처음이었다.
그것도, 2학년 남자아이였다!
이 나이 아이들은 대부분 체중계에 별 감정이 없다.
체중 숫자는 신경 쓰지 않고 가볍게 올라서서 재곤 한다.
오히려 관심은 키에 더 쏠린다.
“아싸! 나 키 컸다. 엄마한테 말해야지.”
“내가 울 반에서 제일 크다.”
재고 나면 곧장 교실로 돌아간다.
그날도 줄줄이 체중을 재던 아이들 사이에서,
유독 율헌이만 멈췄다.
담임 선생님이 다가오셨다.
“율헌아~ 보건 선생님만 아시는 거야. 아무도 안 볼 거야~”
부드럽고 정성껏 설득해 보지만, 율헌이는 고개를 더 세게 저을 뿐이었다.
결국 담임 선생님이 아이를 데리고 나가 상담을 하셨다.
상담이 길어지는 동안 반 아이들은 모두 체중 재기를 마치고 교실로 올라갔다.
한참 뒤, 율헌이는 마음의 준비를 한 듯 다시 돌아왔다.
표정이 비장했다.
그런데 체중계 앞에서 다시 멈춰 선다.
눈동자가 흔들리고, 발끝이 머뭇거린다.
“…… 안 할래요.”
조용한 한마디로, 또다시 종료.
나는 조심스레 물어봤다.
“율헌아, 혹시 무서운 거야?”
율헌이는 잠시 머뭇거리다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집에서 엄마 아빠가 자꾸 ‘뚱뚱이~’라고 놀려요.
나는 깜짝 놀랐다.
율헌이는 보기에 튼튼하고 건강한 아이였다.
밥 먹고 있으면, 매일 그만 먹으라 그래요…
형한테는 안 그러는데.
시무룩하게 중얼거리는 율헌이.
어른들은 그냥 귀여워서 장난처럼 말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 마음엔 그 말이 그대로 박혀버렸다.
‘난 뚱뚱하구나.’
체중계는 어느새 공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날 검진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나는 율헌이와 조용히 눈을 맞췄다.
“괜찮아, 율헌아. 지금 아니어도 돼. 네가 원할 때 하자.”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똑-똑-
율헌이가 보건실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고 보니, 슬리퍼를 끌며 망설이는 중이었다.
“선생님… 지금 아무도 없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율헌이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지금… 측정할래요.”
목소리에 단단한 결심이 묻어 있었다.
문 앞 보건선생님 위치 현황판을 ‘상담중’으로 바꾸고,
문을 잠근 뒤 창문 커튼도 쳤다.
율헌이는 맨발로 체중계 위에 올라섰다.
나는 조용히 아이의 얼굴을 바라봤다.
잔뜩 긴장한 표정에 숨도 크게 쉬지 못하는 듯했다.
아, 조금 짠한 마음이 들었다.
체중계에 숫자가 뜨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속으로 눈물의 박수를 쳤다.
“됐어요?”
“응, 끝났어.”
내가 숫자를 종이에 적자, 율헌이가 한숨을 푹 쉬고는 씨익 웃었다.
그 웃음 하나에 얼마나 많은 마음이 담겨 있었을지.
체중계 위에 조심스럽게 올라서던 율헌이의 발끝이 잊히지 않는다.
어쩌면 집에서 엄마 아빠와 이야기를 나눴는지도 모르겠다.
두 분도 그제야 ‘우리가 너무 쉽게 말했구나’ 하고 돌아보셨을지도.
율헌이가 이렇게까지 마음 써왔다는 걸, 그제야 아셨을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율헌이는 나를 보면 눈빛으로 인사한다.
우리만 아는 비밀이 하나 생겼다.
숫자는 종이에만 남겼지만,
율헌이의 용기는 내 마음속에 오래 남겨두기로 했다.
✏️ 일러스트 by 달토
✏️ Instagram @dalto_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