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말은 마치 퍼즐 같다
보건실에 오는 아이들은 이상하게도 절대 본론부터 말하지 않는다.
“어디가 아프니?” 하고 물으면, 아이들은 높은 확률로 ‘어디가’ 말고 다른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음… 아까 점심 먹고, 유리가 그네를 밀어줬거든요?
맨날 보건실 오는 애 아시죠? 모르세요? 머리 양갈래하고, 얼굴이 하얀 애 있잖아요.
네, 그 애요. 유리가 등을 세게 밀었는데 그때 갑자기 배가…
아니, 어제부터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질문 하나 던졌을 뿐인데,
시간은 어제, 아니 엊그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본론은 좀처럼 나오지 않고, 이야기는 점점 더 풍성해진다.
그날도 그랬다.
문을 열고 들어온 건 동호였다.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얼굴이었다.
“선생님, 저 눈이요…”
하면서 자리에 앉더니, 아주 천천히 말을 꺼냈다.
“제가 어제 제주도를 갔다 왔거든요.”
오… 부럽다, 동호야.
하지만 난 일단 네 눈이 왜 그런지 알고 싶단다.
“비행기를 탔는데요,
막 천둥 치고 번개 치고, 진짜 무서웠어요.”
(이야기의 범위는 벌써 대기권 돌입 중)
“비행기가 오르락내리락~
막 흔들려서요, 진짜… 와, 장난 아니었어요.
그래서 잠도 못 자고 거의 밤샌 거예요.”
그래서…?
무서워서 잠을 못 자서 눈을 비볐구나?
아님 피곤해서 눈에 실핏줄이 터졌나?
나는 나름의 추리를 해가며 말했다.
“아~ 그래서 피곤해서 눈이 충혈됐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하지만 동호는…
엥? 싶은 얼굴로 말한다.
아뇨. 꽃가루 알레르기인데요.
…응?
순간 나는 멈췄다.
제주도? 비행기? 천둥? 번개? 잠 못 잤다며?
그거 다 왜 말한 거야?
눈앞에 있는 건
‘꽃가루 알레르기’라는 명쾌한 본론 하나.
하지만 그 본론을 듣기 위해
나는 제주도의 기상 상황과 비행기 기류 상태,
그리고 동호의 수면 패턴까지 듣고야 말았다.
그날 이후 난 깨달았다.
아이들의 말은 퍼즐 같다는 걸.
정답은 항상 맨 마지막 조각에 들어있다.
그리고 그 퍼즐을 맞추는 동안
나는 아이의 하루를 듣고, 감정을 듣고,
어쩌면 ‘아프다’는 말보다 더 중요한 걸 듣게 된다.
“선생님, 머리가 아파요.”
“어디가 어떻게 아프니?”
“음… 그게 아까 선생님한테 혼나서 기분이 안 좋아서…”
어쩌면 아픈 건, 진짜 머리가 아니라 속상한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본론만 말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이제는 안다.
아이들이 하는 긴 이야기는 그저 ‘말’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감정들과
그들의 하루를 풀어내는 방법이었다는 걸.
✏️ 일러스트 by 달토
✏️ Instagram @dalto_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