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토 Nov 13. 2024

He is a good guy - 호주 회사 뒷담화

세상에 남 이야기만큼 재미난 게 있을까.

타인의 이야기를 뒤에서 한다는게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일인 줄은 알면서도 하지말아야 하는 일을 하는 데서 오는 기묘한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의 섞어찌개 같은 감정은 치명적일만큼 중독적이다.

세상 어디나 그러하듯, 이곳도 사람 둘만 모여도 눈이 네개요, 귀도 네개인지라 서로가 보고 들은 이야기들이 오가는 데 부족함이 없다. 없는 데선 나랏님 욕도 한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여기에서의 '이야기'는 그 사람의 업무 내/외적인 부분에 대한 평가인 경우도 꽤나 빈번하다. 물론 남 이야기라고 해서 꼭 나쁜 이야기만 나누는 것은 아니다. 당사자가 없는 데서 오고가는 칭찬도 당연히 있는 법이니까. 그런데 이 평가가 나쁜 경우 한참 이야기를 늘어놓고서는 굳이 덧붙이는 한 마디가 있다. "He is a good guy"라고 말이다.

지금까지 한 험담을 상쇄(?)하기라도 하는 마냥 방패막이처럼 덧붙이는 저 말을 들을 때마다 마치 한국어의 "애는 착혀"처럼 들려서 나는 혼자 속으로 웃게 되는 것이다.


호주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정말 착하고 친절한 편이다. 싫은 소리를 면전에 대고 잘 하지 않는다. 일할 때도 보통 비슷해서 회의때도 다들 하하호호 분위기 좋게 웃고 이야기하다 헤어진다. 하지만 그 속은 꼭 그렇지만도 않은가보다. 회의가 끝나고 뒤돌아서면서부터 여러 가지로 뒷말이 나온다. '쟤 지금 제대로 이해한건 맞아?' '말이 왜이렇게 길어? 좋은 말만 늘어놓지 실속은 하나도 없는데?' '그러니까 저 부서에 아무도 안가고 싶어하지' 등등 꽤 신랄한 말들이 오간다. '아, 사람은 참 좋은 사람이야. 좋은 사람인데 말이지...' 하는 말을 꼭 덧붙여서 말이다.

결국 He is a good guy라는 말은 신랄한 평가 내지는 험담 앞뒤에 붙는 일종의 쿠션어와도 같다. 한국에서 '내가 걔를 욕하려는게 아니라'라는 말로 시작하는 모든 문장은 결국 그 사람에 대한 욕인 것처럼 말이다.

이런 부분들 때문에 호주에 살고 일하는 이민자들이 착각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되는 것 같다. 앞에서는 모두가 거의 친절하고 다정하니까. 그래서일까 인터넷 상에서 '호주 사람들은 항상 너무 따뜻하고 착하고 서로를 지지해줘!' 라는 의견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전반적으로 한국 회사보다 그런 부분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적어도 겉으로라도 예의있고 존중을 보여주어야 하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회사에서 대놓고 괴팍하거나 무례한 사람들은 일을 잘한다고 하더라도 높은 확률로 주변에서 고립되고 결국 회사를 떠나게 된다. 내가 느꼈던 한국 회사의 경우는 일단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면, 특히나 직급이 높은 사람이 일을 잘하면 조금 무례하기로서니 특별히 앞으로의 진급에 해가 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호주의 경우는 리더 직급으로 가면 갈수록 오히려 더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유쾌하게 대해야 하는 압박이 있는 것 같다. 나이가 많고 회사에서 오래 일을 했어도 반드시 모두가 리더가 되어야만 하는 문화는 아니어서 팀 리더 역할로 올라서는 사람들은 대부분 회사 내에서 더 높은 사다리를 오르려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에 걸맞는 리더쉽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교육과 평가를 지속적으로 받게되고 그렇기 때문에 평판 관리와 부서 내 턴오버에 대해서도 신중할 수 밖에 없다.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면서 회사에서 '조직문화'를 위해 하는 여러 가지 활동들은 아무도 응답하지 않는 메아리처럼 느껴졌는데 호주회사에서 HR이 슬로건으로 내거는 것들은 아무 의미 없는 외침이 아니라 그들의 실질적인 KPI같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서베이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결과를 내보여야만 하는 압박이 있는 것처럼 보인달까? 그래서 HR에서도 지속적으로 사내 문화를 더 유연하고 열린 환경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언급한 여러 이유로 호주 회사원들은 적어도 앞에서는 누구나 친절하다.

최근 내가 회사에서 내 담당 엔지니어 하나가 프로세스를 따르지 않고 답변을 주지 않아서 골머리를 앓은 적이 있다. 내 다이렉트 리더가 개입하여 해결되긴 했지만 "사람을 면전에 두고 나쁜놈이 되기는 어려운 일이니 다음엔 가서 한 번 슬쩍 직접 말해 봐."라고 조언해주었다. 이메일로는 단호박인 사람들도 직접 얼굴을 마주하면 앞에서는 나이스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내 앞에서 잘 웃어주고 친절하다고 해서 그걸 100% 믿어서는 안된다. 지금 하는 행동, 내가하는 일의 성과가 모두 뒤에서 누군가의 이야기 재료로 활활 불타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없는 자리에선 나랏님도 욕을 먹는 법이고 내가 누군가를 씹을 때 누군가도 나를 씹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해야한다. 물론 그걸 생각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모두에게 다 좋은 사람이 되는 법이란 없으니까. 그냥 적당히 선을 잘 지키면서 내게 주어진 일을 잘 해내는 수밖엔. 다만 모두의 친절함을 너무 믿지는 말고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