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다임 해체 ② 여섯 가지 라이프 스타일
2016년 드라마 수업을 들으며 MBTI 이론을 접했을 때는,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아 그것이 개인의 프로필 안에 기재될 만큼 대중적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때아닌 MBTI 열풍을 보며 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나와 타인의 성격을 이해하는 도구로서의 가이드라인을 참으로 필요로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MBTI 대중화로 내향인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전파되기도 했으며, 때로는 감정적이지 않고 공감 능력이 없는 것 같은 사람들의 심리를 1에서 100 사이의 수치로 분석할 수 있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엉뚱하고 독특하다고 여겨진 성격들이 나름대로 집단화되며 커뮤니티를 이루게도 되었다.
우리는 예전보다 일반화의 오류에 빠질 위험에 더 노출되어 버렸지만, 그럼에도 MBTI가 쉽고 직관적으로 유형화된, 간편한 타인 이해의 도구가 됐다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다. 요즘처럼 무엇이든 빠르게 돌아가는 시대에서 말이다.
MBTI가 얼추 열여섯 가지로 나뉜 성격 유형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여 나와 타인을 빠르고 편리하게 판단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 줬다면, 앞으로 제시할 ‘라이프스타일’ 유형 역시 내가 추구할 이상을 빠르게 진단하고 탐색할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인터넷 세상에서 흔히 말하듯, 주류에서 벗어난 삶은 도태되지 않을까?
만약 100명 중 99명이 아니라고 해도 1명이 그렇다고 말하면 당신은 그것을 믿을 것인가? 내 생각에 한국 사회에서는 조용한 99명의 사람들이 목소리 큰 1명의 말만 믿고 불안해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자신이 더 ‘다수’에 속해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다른 방식으로 사는 것도 재미있고 의미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쉽게 떠올리지 못할 만큼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크지 않은 듯하다. 그마저도 ‘월 천 벌어요st'가 아니면 쉽게 묻혀버린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서는 유독 개성 있고 대안적인 라이프스타일이 잘 노출되지 않는 듯한데, 오직 획일화된 삶을 정답이라고 믿고 살아가는 사회적 분위기 탓만은 아닌 듯하다. 사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내 삶의 반경이 얼마나 좁았는지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우리는 검투사도, 마법사도, 힐러도, 탱커도 될 수 있는데 검투사가 되는 길만을 교육받고 자랐다. 감히 어떤 검투사가 자신이 살아보지도 않은 마법사, 힐러, 탱커의 삶을 조롱하고 비난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무리 밸런스 패치가 이상하게 되어 있다고 해도 말이다.
나는 검투사가 되었지만 사실 검투사가 재미없다. 그러니 만약 더 이상 검투사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싫다면, 누군가 알려주기 전에 스스로, 적극적으로 다른 대안적인 직업의 형태를 알아보고 내 삶에 적용해 보는 것이 좋다.
책 『인문학,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다』에서는 무려 여섯 가지 라이프스타일의 기원과 의미, 미래를 분석한다. 모종린 작가가 나눈 여섯 가지 라이프스타일은 아래와 같다.
① 부르주아: 물질을 삶의 중심으로 두는 라이프스타일. 여기서의 물질은 돈뿐만이 아니라 신분, 조직, 경쟁, 근면 등도 포함된다. 직업군으로는 자본가, 금융가, 공무원, 대기업 직원 등이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대표 지역은 서초구.
② 보헤미안: 예술과 자연에서 물질의 대안을 찾는 예술가형 집단.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주체적인 소비를 지향함. 직업군으로는 예술가, 작가, 각종 창작자 등이 있다. 파주 예술 마을, 문래 창작촌, 혜화 등이 떠오른다.
③ 히피: 부르주아에 반기를 들고 사랑과 평화, 연대와 커뮤니티, 자연 등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문화 저항자. 스티브 잡스도 히피였다는 사실을 아는가? 당신이 든 아이폰의 뿌리는 히피 소울이다. 히피들은 마을공동체, 자연공동체, 협동조합을 이루며 살아간다. 한국에서는 제주도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④ 보보: 부르주아의 경제적 안정과 보헤미안의 진보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집단. 고소득 전문직, 강남 좌파 등이 해당된다. 판교 테크노밸리를 분주히 걸어다니는 IT 기업 종사자들이 연상된다.
⑤ 힙스터: 일반적인 트렌드를 거부하고 대안적 가치로 도시에서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경제 영역을 구축한다. 로컬 크리에이터, 창의적 소상공인, 도시창업자 등이 해당된다. 홍대, 해방촌, 성수, 을지로 등지가 떠오른다.
⑥ 노마드: 이동성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공유적 생산과 소비, 도시의 거리 문화와 느슨한 연대 등 새로운 방식으로 물질적 성공을 추구하는 형. 각종 프리랜서, 서퍼, 보더, 힙합 등이 연관된다. 노트북 한 대만 들고 이곳저곳 워케이션을 떠나는 디지털 노마드들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이런 라이프스타일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 여기서 부르주아는 ‘물질주의’, 나머지 다섯 라이프스타일은 ‘탈물질주의’와 혼합된 양상을 보인다. 모종린 작가는 라이프스타일을 나누는 기준이 “나와 물질 사이의 거리”에 기반한다고 했다.
산업 사회의 문화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물질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물질을 삶의 중심에 두고 물질적 성공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다.
도전, 경쟁, 성실, 절약, 절제, 겸손이 미덕이고 이를 통해 얻는 신분과 지위가 중요한 가치였지만, 이러한 획일적 가치 추구에 대한 반발 또한 많았다. 이런 이유로 당대 지식인과 예술가를 중심으로 대안을 찾기 위한 노력이 일어났고 이는 필연적으로 물질과 나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과정이었다.
역사적으로 라이프스타일의 본질은 이렇게 나와 물질의 관계에서 출발한다. 물질을 나의 삶의 어디에 두는지가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결정하는 것이다.
- 모종린, 『인문학,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다』
산업 사회 속 넘쳐나는 ‘돈’과 대량 생산된 물질 사이에서 치이며 그럼에도 부르주아의 삶만을 정답이라 생각하고 살아가던 보헤미안, 히피들은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근본적으로 ‘나’와 ‘물질’ 사이의 관계가 느슨하게 태어났는데 말이다.
마법사가 되고 싶은 모험가에게 아무리 집행검(*게임 ‘리니지’에서 대략 현금 3,000만 원에 맞먹는 검)을 쥐여줘 본들, 그들은 싸구려 지팡이로라도 마법을 부리고 싶어 할 뿐인데. 그러나 누군가 내게 지팡이를 쥐여주는 선행을 베푸는 기회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내가 먼저 여러 무기를 만들어 쥐어보는 편이 주체적인 삶에는 더 도움이 될 테다.
우리는 자신에게 맞는 라이프스타일을 찾고 이미 그 라이프스타일대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선례를 많이 찾아봐야 한다. 유용하지 않거나 내 심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정보는 되도록 차단해야 한다. 내가 검색하고 탐구하고 엿보는 삶들을 이상적인 것들로 가득 채워야 한다. 이 방법은 세상이 틀렸다고 말한 삶이 사실은 ‘얼마나 많은지를’ 스스로 인지하고 용기를 얻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내가 현대 사회에서 말하는 주류의 삶, 높은 확률로 부르주아로서의 삶에 이질감을 느끼며 동화되지 못했던 이유는 단순하다. 그냥 내가 부르주아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르주아가 되고 싶지도 않고, 부르주아가 딱히 부럽지도 않으며, 부르주아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나의 모습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책의 부록에 게시된 라이프스타일 테스트에서 나는 탈물질주의를 추구하는 정도가 가장 높은 ‘순수 탈물질주의자’라는 결과를 받았다. 책에 따르면 2005~2008년 조사에서 나타난 한국의 순수 탈물질주의자 비율은 고작 2.68%였다. 93년생인 나와 엇비슷한 또래들이 청소년기를 보낸 시기인데, 미국, 일본, 스웨덴의 탈물질주의자 비율이 약 45%였던 것에 비하면 아주 적은 비중이다.
그러나 이런 한국에도 2010년 이후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탈물질주의가 확산되기 시작했으며, 밀레니얼의 탈물질주의자 비율은 50%에 도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저자는 말한다. 불과 20년도 지나지 않아 일어난 변화다.
검투사가 되어서, 누군가와 싸워 이겨서, 한정된 자원과 물질을 쟁취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교육을 받고 자라서 불안감이 가득하다. 그러니 마법사도 힐러도 탱커도 모두 검을 들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나. 한국의 가파른 경제 성장 시기를 부정하는 말이 아니다. 시대는 변했고, 이제는 다른 무기를 들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정확히 어떤 라이프스타일에 속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보헤미안을 기본으로 히피와 노마드적 속성이 어느 정도 섞인 형태가 아닐까? 중요한 것은 순수 부르주아일 가능성은 0%라고 확신한다는 점이다.
내 인생의 키워드 분석을 통해 내게 결핍되어 있던 것들, 더불어 살고자 하는 공동체 추구라든지 세속에 집착하지 않는 자유를 원했던 것은 설레지 않는 재난 같은 일상을 더는 견디고 싶지 않았기 때문도 있지만, 단순히 내가 탈물질주의적인 사람으로 태어났고, 탈물질적인 이상을 꿈꾸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어떠한 법인에 소속되어 어떠한 조직에서 물질이나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눈뜨자마자 출근하는 삶은 사실 ‘절대적 보편’의 삶이 아니라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중 하나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감겨있던 제3의 눈이 뜨이는 기분이었다. 아, 세상은 이토록이나 넓은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