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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사랑 Aug 16. 2024

당신이 가진 진정한 결핍은 무엇인가요?

치열한 자기 해체 ③ 결핍과 욕망


소설이든 드라마든 어떤 가상의 이야기를 쓰려면 캐릭터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캐릭터를 만들 때는 그 캐릭터의 결핍과 욕망이 무엇인지를 설정한다. 그래야만 그 캐릭터가 어떤 신념으로 움직이고, 어떤 캐릭터와 갈등할지를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내가 어떤 신념을 갖고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며 어떤 상황을 피해야 할지 알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결핍과 욕망이 무엇인지를 분석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공동체에 가까워지고 싶다


돈, 아파트, 안정적인 직장... 매우 한정된 메뉴를 모든 한국 사람들이 공통으로 쳐다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 문제가 나오는데 기본적으로 상당히 획일적인 사회가 돼요. 왜냐하면 자신을 보호해 줄 사회적인 안전장치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자기 행복을 추구하다가는, 자기 꿈과 이상을 좇다가는 사실상 매우 안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관찰하고 예상하게 되죠.

안정된 직장이라든가 안정된 길, 위험으로 빠지지 않는 길, 이런 쪽으로 갈 수밖에 없지만 그런 길도 자릿수가 매우 한정되어 있겠죠. 경쟁이 심해지는 사회로 점점 진입하게 되겠죠.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불행을 회피하려는, 불행으로부터 도망가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이 되거든요. 그러한 사회 문화적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잘 모릅니다. …

남들이 경쟁하니까 나도 할 수밖에 없다가 아니라 나부터 경쟁심을 안 갖고 사회가 어떻게 가야 올바른가에 대한 줏대를 갖기 시작하면, 그리고 그런 마음들이 연대하면 덜 경쟁적인 사회 혹은 연대하고 협동하는 사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내가 승리자가 된다 한들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다는 차원에서 실패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적대적인 경쟁 속에서는 이겨도 실패요, 실패하면 낭패가 됩니다. 둘 다 승리자가 될 수 없는, 같이 공멸하는 게임입니다.

— ⟨시사기획 창⟩ ‘오늘부터의 미래’ 중


내 인생의 키워드를 살펴본 결과, 나는 필연적으로 외롭고 예민한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었겠구나 싶었다. 또한 온갖 폭력에 무척이나 민감하며 공정함fair에 대한 결핍이 있는 사람이라고도 분석되었다. 이런 사람일수록 자신을 잘 이해해 주고 마음을 살펴 주는 ‘좋은 관계’가 필요할 것이다.


실제로 나는 사회생활 속 인간관계를 거치며 ‘좋은 관계’를 향한 결핍과 욕망이 강해졌다. 단순히 취향이나 가치관이 맞는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차원이 아니다. 보다 고차원적으로, 내 삶을 둘러싼 공동체의 온도를 바꾸고 싶다. 그리고, 나와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공동체에 속하고 싶다.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는 의무적이다. 내가 선택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일하는 직장은 때때로 나의 기준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몰상식한 발언을 반복해서 참아야 하는 곳이며, 또 가끔은 나의 가치관과는 정확히 반대되는 말을 억지로라도 해야 하는 곳이다. 나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서 말이다.


한편 열 명의 사람이 모이면 열 가지의 삶이 모이는 것인데, 한 사람이 다른 아홉 사람의 삶을 일일이 고려하여 배려하기를 기대하긴 어렵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불행에 대하여 쉽게 상상하고 공감하기 힘들 만큼 초격차 사회가 되었다는 사실이 섬뜩하지 않은가? 나는 그렇다. 세상에는 누군가의 기준에서는 ‘존재한다’는 사실마저 인식하기 어려울 만큼 생소한 불행들이 있다는 것은 몹시 섬뜩한 일이다.


생각만으로도 불편하고 힘든 불행들은 사회적으로 널리 다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상처를 품은 사람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누군가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 뜻하지 않게 생채기를 입는다.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가치를 정답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 경쟁 환경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뭔지 모르는 사람, 행복을 추구하기보다는 불행을 회피하는 데만 오랜 시간 몰두한 사람, 매너리즘에 잠식되어 생산적이거나 건강한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많은 차가운 곳에는 하루라도 더 머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괴롭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억지로 웃는 것을 그만하고 싶다. 매순간 진정한 나로 살고 싶다.


내가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곳, ‘연대’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공동체를 찾아 떠나고 싶다. 없다면 내가 그 중심이 되어서라도.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불행을 내 일이 아니어도 쉬이 상상할 수 있는 사람, 내가 진정 원하는 일이 뭔지 아는 사람,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사람, 불안정을 감수하고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용기를 가진 사람. 그런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른다. 그저 영원히 찾을 수 없는 낙원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찾고 싶고, 그곳에 속하고 싶다. 그리고 나 역시 진정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직장 생활로 인해 항상 짜증과 무기력에 잠식된 내가 친절하고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증거를 찾고 싶다. 그러나 우선 내가 속한 차가운 공동체를 벗어나지 못하면, 첫 발걸음조차 뗄 수 없다.



자유로운 일상이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진정한 ‘자유’를 느껴본 적이 도저히 없었던 것 같다. 나와 비슷한 발자취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언제나 모종의 책임감이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어떠한 의무감도 없이 견고한 행복을 느낀 적이 몇 번이나 있을까? 아마도 온전히 나를 위한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히 출근하고 말고의 문제는 아니다. 출근을 하더라도 그 목적의 속성에 따라 행복과 해방감의 정도가 달라질 것이다. 부담스러운 의무감 때문에 혹은 단순히 맹목적으로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내딛는 발걸음은, 아주 조금씩이라도 나의 ‘이상’을 향하는 발걸음과는 무게부터 다를 테다. 둘 중 무엇이 더 ‘자유’에 가깝냐고 한다면 두말 할 것 없이 후자이다.


‘자유’의 개념에 대하여 새로운 정의를 내릴 필요가 있겠다. 출근하지 않는 삶, 원할 때만 일하는 삶, 이런 정의는 단순하고 1차원적이다. 진짜 자유란 내 이상에 가까워지는, 내가 살고 싶은 라이프스타일에 한 발자국 다가가는 행위를 뜻하는 게 아닐까. 아울러 자유란,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몸과 마음을 제약 없이 보살필 수 있는 환경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아닐까?


만성 우울증을 겪은 사람, 그리고 희귀난치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기에 자유에 대하여 그렇게 정의 내리고 싶다. 마음이 아프면 한 템포 쉬어가고, 몸이 아플 때면 제약 없이 내 몸을 누일 수 있는 환경. 그것이 진정 내 영혼을 살리는 자유로운 영혼 살림의 모습이 아닐는지.



자아 정체성에 대한 결핍


나는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어.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이 있는 사람이 너무 부러워.


대학 시절 친구가 내게 종종 했던 말이다.


나는 정말 그게 뭔지 모르겠거든.


직장 생활을 이어 가며 ‘나는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일까?’라는 의문이 자주 들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심리 상담을 다닐 때마다 ‘자아 정체성이 희미하고 모호한 것 같다’는 진단을 듣고는 했다. 그럴 수밖에. 진정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겠다는 의지도 없었고 방법도 몰랐으며, 고민한다 하더라도 다음 날 눈뜨면 출근하기 급급했으니. 나는 분명 잘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았던 사람인 것 같은데… 눈앞에는 전혀 자아를 실현해 주지 못하는 일감이 펼쳐진 모니터가 있다.


내 인생의 키워드 희망편에서 나는 글 쓰는 재주를 가진 것으로 분석되었다. 현재 직업으로 삼고 있는 게임 시나리오 기획자도 글쓰기를 포기하지 못했기에 이룰 수 있었던 성취였다. 그러나 나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고 당당히 말할 수 없다. 이 업계에 온 이유는 ‘쓰는 직업’ 중 그나마 가장 높은 수준의 안정 수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지, 게임이 너무 좋고 평생 게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은 아니니까.


사실은 항상 이쪽에 발 담갔다가 저쪽에 발 담그며 살아온 것만 같다. 꾸준히 한 가지 일을 하지 못하는 것 역시 내 안의 자아 정체성이 단단하지 않기 때문이겠지.


충분히 단단하게 형성되지 못한 자아 정체성은 결국 언젠가는 문제를 일으키고 마는 것일까. 특히나 민감한 정서를 가진 사람일수록 자아 정체감 부재로 인한 타격을 더 크게 받는 듯하다. 그 심리적 타격은 누적되어 언젠가는 외부로 표출된다. 각종 두통이나 소화불량 등 스트레스성 신체 질환, 더 나아가 공황장애, 우울증, 식이장애 등 정신질환까지 동반된다. 그렇지만 약해 보이면 지는 경쟁적 분위기의 사회이기에, 정신이 나약하다는 비난을 듣고 싶지 않아서 많은 경우 우리는 내면의 아픔을 외면한다. 한 연구 결과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우울증 치료 비율이 7%밖에 안 된다는 통계마저 밝혀냈다.


내가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을 투자하는 일이 자아 실현과 맞닿아 있지 않으면 괴로울 수밖에 없다. 매슬로우가 괜히 인간의 욕구 피라미드 맨 꼭대기에 자아 실현을 올려둔 게 아니다. 오랜 시간 괴로움을 겪으면 언젠가는 지금 내 삶의 지속 가능성을 의심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계속 살아갈 수 있을지. 이토록 행복하지 않고 설레지도 않는 삶을 왜 살아야 하는지…. 그런 현상을 나의 영혼은 가짜 인생이라는 네 글자로 표현했다.


우리는 언제나 만신창이가 된 다음에서야 내 삶을 진정 행복하게 해 주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옛날 여러 이유로 포기했던 먼지 묻은 꿈을 발견한다. 살아가면서 사사로운 생각이나 가치관은 바뀔지언정 내가 태생부터 가지고 태어난 성향이나 기질, 그것을 바탕으로 어려서부터 좋아하고 잘했던 일에 대한 열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제 더는 ‘나는 뭐 하는 사람일까?’ ‘나는 뭘 해야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물음의 파도에서 허우적거리고 싶지 않다. 행복을 실현하는 실질적 가이드라인을 세워 보려고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고통이 아니라 희망과 의지를 느끼는 진짜 인생을 살고 싶다.



대안적 라이프스타일의 지속 가능성 발견하기


또 한편으로는 딱히 기댈 데가 없어도, 엄청난 재산이 없어도 퇴사하고 생존 가능하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 보이고 싶기도 하다.


오지선다식 시험 문제만 가득한 공교육 시절을 보내서 그런가? 한국 사회는 유독 정해진 정답을 벗어나기를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획일화된 정답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한 것은 분명 좋아하는 일만으로는 먹고살기 힘들며 경제적으로 도태될 수 있다는 공포감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공포감의 실질적 근거는 치솟은 집값과 소득 격차라는 숫자로 쉽게 표현된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패러다임에 충격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단일한 정답에 물음을 던져보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정답이자 정도라고 말하는 길을 걸으면 정말 무조건 행복할까? 정말 공포감이 사라질까? 오히려 생존력이 낮아지지 않을까? 정답을 벗어나게 되었을 때 ‘나만의 무기’가 없는 그저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까. 20살부터 그런 무기를 준비하는 것과, 은퇴 시기가 다가온 50살부터 준비하는 것에는 열정과 체력 면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한다. 정해진 정답을 따르지 않으면 불행해지는 게 아니라, 모두가 정해진 정답을 따르기 때문에 불행한 사회가 된 것이라고. 우리 개개인이 가진 삶은 오천만 분의 일의 확률로 주어졌다. 삶의 방식도 오천만 개는 있어야 한다. 처음부터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로 발전했다면, 어떤 일을 하든 먹고살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적인 안전망이 생겼을 것이며, 다양한 삶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생겼을 것이며, 더 많은 성공 사례들이 나왔을 거라고. ‘꿈을 이룬다’는 게 그저 막연한 일이 아닌 사회가 되었을 수도 있다고….


퇴사하고 돈을 이만큼 벌었어요, 가 아니라 생존에는 지장 없더라는 심플한 선례를 만드는 사람. 오히려 회사가 아니어도 살아갈 수 있는 생존력과 나만의 무기를 만드는 데 성공한 사람. 막연한 성공 사례보다는 오히려 ‘저렇게 살아도 살아지는구나!’ ‘저런 라이프스타일도 충분히 만족스럽게 지속 가능하구나.’ 하며 편견과 두려움을 깨보이는 사람. 그런 대안적 라이프스타일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제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나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의 영혼까지 살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 내가 가진 목표이자 욕망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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