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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사랑 Aug 09. 2024

내 인생은 어떤 키워드를 가지고 있을까?

치열한 자기 해체 ① 키워드 분석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인생을 되돌아보는 작업은 막연하여 한눈에 보기 쉽도록 키워드로 나열했다.



[희망편] #SKY졸업생 #글 #빚없음 #친구 #애인


내 인생의 키워드 희망편은 생각보다 적지 않다. 죽어라 공부해 고려대학교 인문학부에 입학했다. 사교육비 0원으로 고학력을 쟁취하고, 전국 엘리트가 다 모인 대학교에서도 올 A+, 전액 장학금을 받고 다녔다. 이런저런 회사들을 거치며 크게 일관성이 떨어지진 않는 커리어를 쌓아왔다. 20대 중반 그토록 되고 싶었던 작가가 되었고, 이듬해 웹소설 작가로도 데뷔하여 큰돈은 못 벌었지만 남아 있던 학자금 대출을 일시불로 갚았다.


솔직히 말하면 공부하기 싫다고 생난리를 쳤을 때 리모컨이나 곽티슈 같은 것으로 머리를 처맞지만 않았다면 공부를 안 하고 진작 다른 걸 했을 것 같다. 나는 공부가 너무 싫어서 문제집을 갈갈이 찢거나 가족 친척들이 보는 앞에서 벽에 집어 던지기도 했었다.


어차피 이렇게 살 거였으면 뭐 하러 대학에 갔나 싶기도 하고 요즘 시대에 대학 졸업장은 갈수록 힘을 잃고 있다. 하지만 이력서에 ‘고려대학교 졸업’이라고 쓰여 있으면 조금 더 주목을 받는 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학력을 내세우면 일자리를 얻는 데 ‘수월했다’.


대신 나는 이력서 밖에서는 오히려 내 학력을 항상 숨겨 왔다. 필요하지도 않았던 걸 내 무기로 삼는 게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굳이 여기에다 쓰는 건 이거라도 없으면 희망편 키워드가 너무 부실해서일 뿐.


아무튼, 나는 주식이나 코인으로 큰 수익을 실현하진 못했어도 신용 점수 1,000점의 검소한 소시민이다.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으며, 평생 연락하며 지낼 친구들도 있고, 나를 몹시 사랑해 주는 태양 같은 동거인도 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희망편이라고 생각한다.



[절망편] #자살유가족 #친족성추행 #비장애형제 #가정폭력 #탈가정청년 #희귀난치병 #우울증


문제는 내 인생의 키워드 절망편이 희망편과 극단적으로 반대인 지점에 있다는 점이다. 나는 친부를 KTX 선로에서 자살로 잃은 자살 유가족이다. (모든 자살 유가족이 그렇진 않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삶에 대한 의욕이 별로 없다.


나는 양부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성폭력 피해자이자 지적장애인 오빠를 가진 비장애형제이며, 엄마는 아무래도 나르시시스트로 추정된다. 이 같은 각각의 이유로 가족 구성원과 진정으로 대화가 통한 경험이 단언컨대 단 한 번도 없다. 당연하게도 가정 폭력 피해자라서 살기 위해 집을 나온 탈가정청년이다. 경제적 지원은커녕 20대 창문 하나 없는 원룸텔부터 시작해 독립한 뒤로도 ‘가장’의 역할을 강요받았다. 심지어 서른이 넘어서는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류마티스계 희귀난치병까지 확진받았다.


이쯤 되니 참 가지가지 한다 싶었다. 워낙 희소한 키워드가 많아서 그런지 내 레즈비언 친구는 나더러 “성 정체성만 빼면 탑 티어 퀴어”라고 한다. 솔직히 말하면 모든 일상이 생존기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여기서 눈에 띄는 사실은, 희망편 키워드는 모두 내 노력으로 얻은 반면 절망편 키워드는 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게 떨어진 운명이라는 점이다.


이렇다 보니 난 나보다 힘들어 본 적 없는 사람의 조언은 전혀 듣지 않는 사람이 됐다. ‘장난해? 어디 감히 나보다 힘들다고.’ 이런 끔찍한 생각은 자꾸만 스스로를 외롭게, 뾰족하게 만들었다. 사람마다 고통의 역치는 다 다른데 나는 항상 내 기준으로만 타인의 고통을 판단했다.


이처럼 내가 겪은 부정적인 경험들은 일상에서 종종 나의 언행을 자기검열하게 만든다. 혹시 내가 이상하게 구는 건 아닐까? 분명 나한테 문제가 있을 거야. 솔직히 없는 게 이상한 거 아니야? 유기 불안이 심각한 나는 종종 누군가로부터 버림받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 때마다 옆으로 누워 눈물로 매트리스를 적시며 쿠팡에 번개탄 따위를 검색한다. 나의 정신과 주치의 선생님은 내게 준 약이 초진 처방의 두세 배는 되는 강도라고 했다.


때때로 나는 내 멘탈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부정했기에 아마도 5년 전 네 번째 연인과의 이별 때문에 먹은 것 이후로 오랜만에 정신과 약을 먹었는데, 간만에 먹은 세로토닌은 정말이지 달콤하더라! 번개탄 따위를 왜 검색했나 싶을 만큼. (너무 우울한가? 난 항상 내 이야기를 다룰 때면 나름 블랙 코미디라고 생각하고 쓰지만 항상 ‘너무 우울하다’는 악플을 받아 슬프다. 만약 우울해진 분이 계신다면 사과드리며, 코미디에는 영 재능이 없지만 아무튼 난 웃겨 드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주시길.)


물론 최고와 최악을 기준으로 하긴 했지만, 키워드 나열로 대강 확인한 내 인생은 그야말로 양극단의 재질을 오가고 있었다. 냉탕과 온탕. 날계란과 삶은 계란. 태양과 달만큼의 극단. 희망도 현재 진행형, 절망도 현재 진행형이다. 하지만 어떤 인생이든 척박한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건 매한가지 아닐까?


어떤 장르든 그 장르답게 하는 일종의 법칙이 존재한다. 코미디 장르의 법칙은 바로 어떤 주연 캐릭터도 죽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내 삶의 장르를 코미디로 정했다.


여하간 인생이 막연히 불행하게만 느껴진다면 이처럼 현재의 ‘나’를 이룬 역사의 키워드를 샅샅이 파헤쳐 나열해 보는 작업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희망편에서는 내가 가진 강점과 여러 무기를 확인할 수 있고, 절망편에서는 나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매우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 키워드 분석만 잘해도 절반은 다 된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때때로 자아 성찰을 어려워한다. 자신의 장점을 찾기를 어려워하거나 깊고 깊은 내면 심리, 불안, 트라우마를 마주하기 어려워한다. 내 인생의 키워드를 제대로 분석할 수만 있게 된다면 더는 ‘나는 어떤 인생을 살아야 행복할까?’ ‘내 이상은 뭘까?’ ‘내가 좋아하는 게 도대체 뭐지?’ 하는 질문은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니 자유와 이상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당장 노트를 펼쳐 지금껏 살아온 인생 분석을 해봄직하다!


실제로 이렇게 인생 키워드를 분석해 보며 나는 여러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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