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은 이미 일종의 재난이며, 실제 재난은 이러한 일상에서 우리를 해방시킨다.
- 레베카 솔닛, 『이 폐허를 응시하라』
2023년 여름, 한창 퇴사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때였다. 어느 날의 출근길에서 나는 생전 겪어보지 못한 증상을 겪게 된다.
버스가 회사 앞 정류장에 가까워지는 순간, 갑자기 눈앞이 새하얘지면서, 숨이 턱 막혔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몸을 이끌고 회사 로비에 들어서자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내가 왜 이러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근무 중인 층에 가까스로 올라와 화장실로 달렸다.
웩– 변기 앞에 앉자마자 속이 역류했다. 계속해서 게워내었지만 구토가 멈추지 않았다. 숨이 가쁘고, 머릿속에는 싫다는 단어만이 계속 반복됐다. 싫어, 싫어, 싫어, 싫어, …
변기칸에 갇혀 계속 토를 하면서 나는 지난밤 일을 회상했다.
뭔가 살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어.
지금 당장이라도 창문 밖으로 몸을 던지고 싶다.
그럼 회사에 안 가도 될 거 아니야.
어차피 집은 1층이어서 창문에서 떨어져 봤자 조금 다칠 뿐일 텐데도 그렇게 생각하며 펑펑 울다가 잠들었다. 그리고 잠에서 깨서, 좋아하는 맨투맨과 편한 바지를 입고 아무렇지 않은 듯 출근 준비를 했다. 기계처럼.
무언가 잘못된 게 틀림없어.
이건 가짜 인생이야.
손으로는 변기를, 머리로는 희미한 정신을 붙잡고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삶이 정상은 아닌 듯해. 이건 진짜 인생이 아니야. 난 지금 가짜 인생을 살고 있어.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지금 필요한 건 다름 아닌 영혼을 살리는 일, ‘영혼 살림’이라는 것을.
어느덧 11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메신저로 나를 찾는 연락이 와 있었다.
[사랑님, 무슨 일 있어요? 아직 자리에 없어서 …]
[죄송해요 제가 출근은 했는데 갑자기 몸이 안 좋아서 …]
거울을 보니 도저히 일할 수 있는 꼴이 아니었다. 황급히 당일 휴가를 내고 택시를 잡아타고서도 나는 중간에 내려 갓길에 핀 작고 예쁜 노란 들꽃에 구토를 해야 했다.
마침내 가까스로 집에 돌아와 몸을 뉘었다. 집으로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오후경 조금 기운을 차리고 눈을 떴다. 군데군데 구토가 묻은 옷을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몸을 깨끗하게 씻었다. 당시 나는 엄마와 연을 끊나 마나 하는 문제로 심리 상담을 받고 있었다. 그 모든 마음 상태와 어제 했던 위험한 생각과 오늘 있었던 일이 무관하지 않음은 명백했다.
내가 ‘가짜 인생’을 살고 있다는 강렬한 깨달음을 얻은 뒤, 일단 퇴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떻게 들어온 회사인데.
스치듯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닌 것 같았다. 내 정신에 어딘가 문제가 생긴 것이 확실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출근길에 토를 뿜어서까지 다닐 만큼 회사가 좋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보다 이성적인 결정을 하기 위해 나는 내가 왜 퇴사를 하고 싶은지 그 이유를 차근차근 글로 풀어보기로 했다. 글쓰기는 언제나 나에게 해답을 주고는 했으므로.
퇴사, 더 정확하게는 ‘탈법인’, 즉 법인에 소속되지 않는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치열한 자기 해체의 단계였다. 백지에 검은 글씨를 적어내려 서른 해 남짓의 삶을 해체해 보면서 나는 더더욱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확실히, 나는 지금 원하는 인생을 살고 있지 않다고. 내 영혼을 존중하고 있지 않다고. 어느 출근길의 구토쇼는 영혼이 내게 보내는 메시지였던 것이다.
이 글은 마냥 분석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몹시 주관적인 한 개인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지도. 유쾌하지만도 않을 거고, 때때로는 처절하고 폭력적이라 읽기에 유의를 요하기도 할 테다. 그저 단순히 ‘아, 다 때려치우고 싶다’로 시작해서 시답잖게 사소하다가 갑자기 존재론적 사유와 근원적 물음으로까지 뻗어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연하다. 사람 인생이 어떻게 한결같고 아름답기만 하겠는가? 이 글의 끝에 반드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의 영혼은 자유롭게 살아갈 가치가 있으며 끝내 아름답다는 결말을 내고 싶다.
날 둘러싼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가? 지금 살고 있는 인생이 가짜처럼만 느껴지는가? 분명 그런 마음에는 원인이 있을 것이다. 세상에 이유 없는 결과는 없기 때문이다.
야근이 많다거나 흥미 있는 일이 아니라거나 함께 일하는 사람이 별로라거나, 그런 표면적 이유는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도출되기 쉽다. 티가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표면적 이유에서 더 나아가 조금 더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이유를 찾고 싶었다.
왜냐하면 아무리 갈망하고 원했던 회사를 가도 퇴사, 즉 탈법인을 하고 싶은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그런 마음을 분석하지 않으면, 이 글은 단순히 회사 가기 싫은 마음을 길게 늘린 합리화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누구나 경제 활동을 해야 한다. 사실 기댈 데 없는 탈가정청년(*탈가정청년은 가정 폭력, 정서적・경제적 학대, 아우팅 등의 이유로 원래 가족과 물리적, 경제적, 정서적 단절을 선택한 청년을 뜻한다. — 282북스)인 나는 오히려 퇴사를 하기에 불리한 조건을 가졌다. 그런데도 이직도 아닌 완전한 퇴사를 열망한다. 여기에는 분명 내 마음속 어딘가에 내재한 보다 심도 깊은 원인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가짜 인생을 살고 있다는 직감을 얻은 날, 나는 처음으로 내 인생을 차근차근 되돌아 보면서 도대체 무엇이 진정한 문제인지를 파헤쳐 보았다. 그리고 어떠한 형식적인 마음 분석법과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패러다임을 발견하면서, 이를 세상 밖으로 당당히 외치는 게 옳은 일이리라는 확신을 얻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