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명교 Dec 11. 2021

싫지만 좋은 날

새벽부터 겨울비가 낙엽길에 떨어졌다. 이제 더는 늦장 부리지 말고 계절의 주인 자리를 내어 놓으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맹렬한 빗줄기는 마른 나뭇잎을 적시고, 나뭇잎은 난 곳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자연이 하는 일을 가타부타할 수는 없지만, 비가 오는 날은 게을러지고만 싶다. 꼼짝 않고 누워서 숨만 쉬고 싶을 정도로. 비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비는 맞지 않고 커피 한 잔 마시는 거라면 괜찮을 듯싶다.



문제는,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 출근길에 평소보다 도로 위에서 20분을 더 보냈고 새로 장만한 부츠 대신 젖어도 덜 속상한 운동화를 꺼내 신었고 내리치는 비를 맞기 싫어서 접이식 우산 말고 무거운 장우산을 썼다. 또 하필 이런 날 버스와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고 나서야 인터뷰 장소에 도착했다. 휴.



다행인 건, 늘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 약속 시간에 늦을까 봐 일찍 나선 덕분에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았고 약속 장소에 한 시간 일찍 도착한 덕분에 점심을 제 때 챙겨 먹었고 이동하는 동안 지하철역 근처 맛집을 검색하다가 딱 취향저격인 집을 발견했고 대기가 필수라던 식당인데 도착하자마자 자리가 났고 근래 먹은 것 중에 가장 맛있는 한 끼를 즐길 수 있었다.



비 오는 날은 싫지만,

결국은 좋았다.



2021.11.3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