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새로 다니며 알게 된 네 명의 파라과이인들은 친절하고, 웃음이 많았으며, 시간이 많았다.
대학에 새로 다니게 된 나는 말을 못 알아들었고, 도움이 늘 필요했으며, 차가 없었다.
그 친구들은 네 명이서 곧 절친이 되어 나를 학교 끝나고 점심 먹는 곳에 초대하거나 공원을 걷자고 해주었지만 난 그 아이들과 버스를 탈수조차 없었다.
파라과이에 와서 부끄럽지만 대중교통을 한 번도 이용하지 않았다... 버스비는 한국돈 500원 남짓, 거리에 상관없이 무조건 그 가격이고, 정류장이 있어도 어디에서나 내릴 수 있다. 한국에서 내가 이미 중학교 올라갈 즈음, 정류장 외 상하차는 엄격히 금지되어가고 있었는데... 여기 오니 딱 한국의 90년대를 경험하는 것 같았다.
버스 안에서 금품 갈취는 너무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 남편도 시어머니도 내게 절대 타지 못하게 했고 내가 이용하는 교통수단이래 봤자 택시 아님 자가용인 것이다.
나는 이 아이들과 18살처럼 길에서 음식을 먹으며 버스를 타고 움직이지 않았고, 통하는 것이 거의 없는 것이다.. 결혼을 함과 동시에 뭔가 유부월드에 들어가서인지. 뭔지 모를 장벽이 느껴진다. 그룹 프로젝트를 할 때도 나는 그 시간 시댁일로 어딘가에 가야 하기에 가지 못했다.
그때쯤, 다른 수업에서 40살의 스테피를 만나게 됐다. 나이가 있고 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그 친구와는 이상하게 더 말이 잘 통했고, 집도 가까워서 본인 차로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간단한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몇 명의 동급생들을 만나가기 시작했을 즈음, 나는 갑작스럽지만 반가운 임신사실을 알게 됐다. 결혼 4개월, 아버님이 소천하시고 3주 만에 알게 된 아이 소식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