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마스쿠스 Jul 11. 2024

스페인어는 또 처음이네

올라, 한마디 알고 이민온 나란 사람.

"아, OO오빠? 파라과이 교폰데, 여자친구한테 잘해주는 거 같더라고."

내 남편에 대해 처음 들은 말이었다.

그리고 파라과이라는 나라는 그냥 지나쳐가는 단어였다. 검색을 해보지도, 무슨 언어를 쓰는지도 몰랐는데, 어쩌다 이 사람을 사귀게 되고 나서 파라과이에서 쓰는 언어가 스페인어와 과라니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원래 언어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사귀고 6개월쯤 후부터 "듀오링고"라는 앱으로 스페인어를 다운로드하여 단어나 간단한 인사말을 익혔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심각하게 열심히 배우지는 않았던 것이, 그는 절대로 파라과이에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다니는 대기업 회사에서의 직책과 하는 일도 굉장히 마음에 들었고, 오랜 미국 생활에 익숙하고 행복해했었다. 나도 원하는 회사에 이직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우리 둘은 앞으로 열심히 회사생활하고 커리어를 다질 생각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마음먹은 데로 흘러가지 않는 법.

우리는 파라과이에 도착했고, 난 스페인어를 써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설마, 영어를 할 줄 알거나 알아는 듣겠지... 하는 안일한 내 상상은 산산조각 깨졌고, 아무도 정말, 예를 들면 지금까지 8년 동안 내가 영어로 대화한 파라과이 인은 5명 정도로, 나는 스페인어를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환경에 놓였다.


파라과이에 이민 오기로 결정한 이유 중에 하나는 "스페인어를 배워놓으면 좋을 것 같다" 도 있었는데, 그때는 막연히 뭘 몰랐을 때 이야기고. 여기 오니, 나는 벙어리였다. 그렇지만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는 법!

나는 책 2권을 미국에서 구매해 왔다. 한 권은 기초 스페인어 문법. 그리고 다른 한 권은 중고급 스페인어 문법. 영어에서 스페인어를 배워보기로 한 것이다. 이미 이태리어를 배워본 경험이 있기에 어느 정도는 문법적으로 이해가 가능했는데 웬걸, 말을 못 알아듣겠는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로제따스톤"이라는 앱을 다운로드하여서 정기구독을 한 다음, 듣는 연습이랑 스피커로 말하는 연습을 먼저 선택했다. 아버님이 아프시기에 왔다 갔다 과외나 학원을 다니니가 어려워서 일단은 가장 손쉬운 앱으로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하루에 15-20분 남짓. 단어 조금 외우기, 자연스럽게 배우기. 어차피 오래 살 생각이라 천천히 하자는 생각으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나아갔다.


임신하고 나서 언어를 더욱 배우려고 노력한 이유는, 내 아이에게 조금 더 당당한 엄마가 되자,라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내가 조금이라도 언어를 잘하면 이 아이에게 유익하지 않을까? 학부모 상담도, 의사 진료 때도, 어디 식당을 가도, 엄마가 말을 잘 못하면 내 아이가 당하게 될 불이익이나 조롱이 있을까 봐 이 악물고 더 노력했던 것 같다. 아마, 아이가 아니면 나는 더 우울감에 휩싸이지 않았을까 싶다. 첫아들이 100일이 되어 가자, 나는 아이를 범보의자에 앉히고 처음으로 스페인어 과외를 받았다. 일주일에 두 번, 한 시간씩. 가족 이외의 사람과 거의 처음 해보는 대화였다. 그때부터였다, 스페인어 배우기의 첫걸음을 뗀 것이.

이전 13화 새내기 엄마, New Mother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