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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마스쿠스 Jul 24. 2024

장사일지

엄마의 장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엄마의 첫 장사는 인사동 길가 한복판에서 이루어졌다.


그곳은 아빠가 가게를 하는 곳에서 걸어서 5-7분 거리에 있었다. 뒷길을 이용하면 4분으로 줄일 수도 있는 번잡한 거리거리 사이를 지나가면 엄마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볼 수 있었다. 


아빠는 종각의 작은 한지가게를 하셨고, 엄마는 아빠의 사촌이 하는 가게 앞에 매대를 하셨다.

말이 매대지, 그전 글에서 말했던 넓고 기다란 나무판때기에 잡다한 물건을 놓고 현금장사는 하는 것이었다.

아침 9-10시부터 늦게는 저녁 10-11시까지 엄마는 쉬지 않고 장사를 해댔다.


엄마의 널빤지에는 다양한 물건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작고 색이 진한 중국풍 소품이었다. 

작은 보석을 넣는 보석함, 자개, 반짇고리, 열쇠고리,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소품들... 

그러다가 장사가 잘되자 엄마는 옥반지, 산호반지, 작은 보석들을 가져와서 팔기도 하였다.


물건을 보는 눈이 있었던 엄마였던지, 어느 날 안 자고 엄마를 기다린 날이 있었는데, 검은 가방 안의 꾸깃한 비닐봉지 안에서 무더기로 돈이 쏟아져 나온 것을 본 적이 있다.

기뻐하며 돈을 세던 엄마의 입에서 만, 십만, 백만, 천만이 나온 날을 잊지 못한다.

길거리에서 하루 소품 팔아 번 돈이 천만 원이라면 누가 믿을까.

하지만 외국인의 발걸음이 막 닿기 시작한 인사동은 굉장히 활발한 경기로 현금 흐름이 원활했고, 엄마는 그 덕에 돈을 긁어모았다. 


장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엄마는 이제 시장에서 물건을 사지 않고, 중국에 직접 가보기 시작했다.

물건을 구하기 위해서 김포공항으로 허름하고 간단한 옷을 꿰어 입고, 검은 이민가방 두 개를 질질 끌고, 머리를 잘 쓴 묶은 채 동동거리며 출발했다. 그렇게 엄마나 떠나고 없던 첫날, 나는 학교 다녀와서 엄마가 처음 없었다.


기갈나고 반지름 한, 엄마가 청소를 싹해 놓고 간 노란 니스를 칠한 방바닥에 누워 눈물을 흘리며 "엄마가 없네.."를 입 밖으으로 소리 내어 말했다. 아홉 살. 동생은 유치원 종일반이라 아직 집에 오지 않은 시간. 

다섯 시까지 오지 않는 동생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그날에 다시 가본다. 


그리고 집을 왔다 갔다 하며 우연히 엄마의 손바닥만 한 수첩을 보게 되었는데 그 안에서 엄마가 판 장사금액도 보게 됐던 것 같다. 엄마는 하루하루 기록하며 얼마 팔았는지도 잘 기록해 두었다. 엄마를 기다리며 그 공책을 알지 못하는 한자도 있는 것을 보며 엄마의 손길을 느꼈다. 엄마가 해놓은 밑반찬을 먹고 밥을 해주는 아빠의 뒷모습을 삼일정도 보면, 엄마가 돌아왔다. 어마무시한 크기의 이민가방 두 개를 달동네 집까지 아빠와 둘이 엉금엉금 끌며 외친다. "엄마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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