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는 보지 못했던 해리 포터 시리즈 속 사랑

사랑의 다양성에 대하여

by 담결

****스포 주의****

본 글은 소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중요한 스포일러를 가득 포함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이 브런치북의 마지막 글을 쓰게 되었다. 사실 진작에 마무리했어야 할 글인데, 최근 현실의 삶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탓에 자꾸 글쓰기를 미루다 보니 이제야 끝내게 되었다. 요즘 새삼 인생은 결코 내 마음대로, 혹은 예상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지낸다. 혹시라도 이 글을 기다리셨던 분들이 계신다면, 일이 늦어져서 정말 죄송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 그리고 이 브런치북을 기획했던 시기 이후 많은 일이 있었던 만큼,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글을 마무리하게 될 것 같다. 이번 글에서는 학문이나 전문적인 지식이 아니라 '현재의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내가 성인이 된 이후로, 나에게는 내적 & 외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미성년자일 때와 다른 점은 아마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여러 인생의 이야기들을 접해봤다는 점이다. 어릴 때 나는 인간의 삶에는 규격화되고 고정된 단계가 있다고 믿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당연히 중학교에 진학하듯이, 모두가 같은 수순으로 삶을 살아간다고 말이다. 그래서 어린 날에는 스스로의 삶도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렇게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르게 생각한다. 삶의 형태는 다양하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다양성이 수용되는 세상이 바람직하다고 믿는다.


요즘 예상치 못한 환경 변화를 겪으며, 많은 사람을 새롭게 만났다. 가장 최근 모임에서는 결혼과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너무나 다양한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후, 나는 한층 더 복잡해진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연애와 결혼, 사랑, 깊고 내밀한 관계의 의미와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요즘이다. 나는 어떤 형태의 관계를 맺으며 살고 싶을까. 내가 그리는 미래는 나에게 있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났을 때 나는 어떤 태도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 가치를 쫓아 살고 있는가.


해리 포터 시리즈는 약 20년 전에 쓰인 소설이다. 1편은 거의 30년 전에 완성됐다. 하지만 그 안에는 당시 어린 내가 알지 못했던, 다양한 형태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사랑이라는 주제와 관련해서, 이 브런치북의 마지막 글에서 다루고 싶은 장면은 사실 딱 하나뿐이다. 볼드모트와 최후의 전투에서 해리가 "죽은 후", 정신세계 속 킹스크로스역에서 덤블도어와 재회했던 장면인데, 해당 부분의 서술이 길어서 부득이하게 3개의 발췌본으로 쪼개서 첨부한다.

7편 죽음의 성물, 제35장 킹스크로스에서 발췌
7편 죽음의 성물, 제35장 킹스크로스에서 발췌
7편 죽음의 성물, 제35장 킹스크로스에서 발췌


해리와 덤블도어는 그린델왈드가 볼드모트에게 거짓말을 했던 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볼드모트는 딱총나무 지팡이를 추적하고자 그린델왈드를 찾아갔지만 그린델왈드는 지팡이에 관해 모른다며 거짓말을 하고 죽임을 당한다. 하지만 그는 지팡이의 위치를 알고 있었고, 그때 지팡이는 덤블도어의 무덤 속에 있었다. 해리는 어쩌면 그의 거짓말은 덤블도어의 무덤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덤블도어는 눈물을 흘린다.


어릴 때는 이 부분에서 덤블도어가 왜 울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사랑에 대해 잘 알지 못했으니까. 연인 간의 사랑은 이성 간에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어린아이였으니까. 반면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는 조금이나마 다양한 모습을 한 사랑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또한 누군가를 깊게 사랑할수록 그 사람 때문에 우는 일이 많아진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덤블도어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덤블도어는 그린델왈드를 사랑했던 것이다. 아마 생애 처음으로 자신과 대등한 수준의 천재를 만나, 그린델왈드야말로 자신의 유일한 이해자라 여기며 마음이 깊이 끌리지 않았을까. 비극적인 사건으로 여동생 아리아나가 죽고 서로의 삶이 어긋나게 되었더라도, 어쩌면 덤블도어는 평생토록 그린델왈드를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다시 만나거나 이뤄질 수는 없는 관계이지만, 그가 자신처럼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기를 기다리는 것. 그것이 덤블도어만의 사랑의 형태이다.


비록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위의 발췌본에 있는 해리의 말은 덤블도어에게 일종의 사랑의 결실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그린델왈드 역시 평생토록 마음 한편에는 덤블도어를 품고 살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그것이 덤블도어가 품은 감정과는 다른 마음이더라도, 적어도 최후의 순간에는 덤블도어를 지키며 죽어갔다면 두 사람의 마음이 이어졌다고 생각하고 싶다. 내 이기적인 상상일 뿐일지도 모르지만.


나도 덤블도어와 그린델왈드가 그랬던 것처럼, 그것이 어떤 형태이더라도 내 삶에 의미를 가져다주는 사랑을 하며 살고 싶다. 사회적 및 법적으로 명확하게 정의되는 관계든 아니든, 크든 작든, 더 나아가 쌍방으로 이뤄지지 못하는 것일지라도. 사랑은 단순히 외로움을 소거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고 믿으니까. 더불어 나와 다른 형태의 사랑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잊지 않으면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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