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를 세는 이유 (6)

by 담결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뭐부터 잘못됐더라. 나는 뭘 했더라.


그래, 이번 주만 튜터링 시간을 바꾸자고 했지. 그래서 그렇다. 내가 애초에 시간을 안 바꿨으면 한유진이 사고를 당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 때문이다.


이제 한유진은 이번 학기 학점도 제대로 챙길 수 없고, 교직이수도 할 수 없다. 저번에 그렇게 기뻐하면서 중간고사 성적이 잘 나왔다고 자랑했었는데. 내가 한 사람의 미래를 부쉈다. 모든 가능성을 0으로 만들었다.


나는 뭘 해야 하지. 뭘 할 수 있지. 교수님을 찾아가서 한유진의 상황을 설명하고 기말 점수를 대체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달라고 부탁드려 볼까.


한유진네 집으로 찾아가서 죄송하다고 사죄를 드려야 하나.


아니지 그전에 본인을 찾아가서 사죄해야 하나.


찾아갈 용기는 있고? 내가 그럴만한 배짱과 염치가 있나.


내가 찾아가서 사과하면 한유진은 나에게 뭐라고 말할까. 어떤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까.


무섭다. 나는 겁쟁이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한유진의 사고 소식을 접하자마자 내 머리는 무서운 속도로 일련의 사고들을 형성해 내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불어나서 나를 삼키려 잡아드는 생각의 늪에 잠식될 거 같았다. 그렇게 바보 같이 시간을 보내는 사이에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나는 기말고사를 나름대로 잘 지나 보냈다. 그야말로 나의 인격을 제거하고 시험만 보고 다니는 기계가 된 것 같았다.


기말고사 기간이 끝나고 종강을 맞이하자 나는 조금 정신이 들었다.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내 동생과 달리, 그녀는 살아있으니까. 그 점을 인식하니 역시 얼른 병원으로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래서 나는 혼자 간식거리를 사들고 병문안을 갔다.

“선배 왔네요?”

“어… 기말고사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이제야 왔네.”

“안 그래도 심심했는데 와줘서 고마워요.”

“몸은 좀 어때?"

"간단한 수술을 했는데, 수술 직후보다는 훨씬 움직이기 편해요. 그래도 당장 다음 학기에 학교를 다니기엔 어려운 정도래요."

"그래... 그렇구나. 얼마나 더 여기 있어야 돼?"

"일단 한 달 정도는 더 있어야 될 거 같아요."

"많이 아파?"

"솔직히 말하면 생각보다 좀... 힘들긴 해요."

인생에서 한 달, 한 학기가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렇게 강제로 사라지는 건 어떤 심정일까. 한유진의 대답을 듣고 이런 생각이 들었기에, 나는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한 채 침묵했다. 병실에는 창밖에서 햇빛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그리고 시계 초침 소리가 똑딱거리는 소리만 작게 들릴 뿐이었다. 우리가 대화 도중 침묵할 때 늘 그렇듯 침묵을 깨는 건 한유진 쪽이었다.

"기말고사를 못 봐서 아쉬워요. 중간고사를 그렇게 잘 봤었는데."

나는 계속 침묵했다.

"그래도 메일을 쓸 수 있게 되자마자 교수님들께 연락해 봤는데, 해개는 기말고사를 중간고사 점수로 대체해서 성적 내주시겠다고 하셨어요. 잘됐죠?"

말하면서 한유진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더니 눈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근데 그거 말고 다른 강의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내년에 재수강하면 되려나. 그동안 저 뭐 하죠? 하하."

그 말을 끝으로 한유진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는 작게 흐느끼며 아주 투명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는 점점 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그저 병실 침대 옆에 앉아 우는 그녀를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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