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를 세는 이유 (7)

by 담결

한유진은 한참을 울었다. 그러다가 점차 울음을 멈추며 눈가를 닦았다.

“미안해요 선배. 갑자기 선배를 보니까 학교 생활이 생각나면서 앞으로 어떡하나 싶어 가지고.”

“이제는 좀 괜찮아?”

“사실 입원해서 할 수 있는 게 한계가 있다 보니 뭐가 해결되는 게 없잖아요. 그래서 걱정은 많이 돼요.”

“물어봐도 되나 싶긴 한데... 혹시 교직이수는 어떻게 되는 거야?”

“모든 교수님들이 편의를 봐주지는 않을 가능성이 있어서, 학점이 제대로 안 나오면 떨어질 가능성이 커요. 근데 이거는 내년에 복학해서 재지원이 가능한지 다시 알아봐야 할 거 같아요.”

“잘 풀리면 좋겠다. 내가 대학원 연구실에서 연구참여를 하게 돼서 방학 때도 학교에 자주 나갈 거 같거든. 뭐라도 필요하면 나한테 부탁해.”

“알겠어요, 고마워요 선배."

이후로 한유진은 평소처럼 호기심 어린 태도를 취하며 학부생 연구참여는 무얼 하는 활동인지, 나의 다른 방학 계획은 무엇인지 등을 질문했다. 상투적인 대화가 마무리되자, 한유진은 아까 자신이 눈물을 쏟던 장면이 머릿속에 생각난 듯 화재를 전환했다. 그녀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아래를 보며 말했다.

"선배랑은 따지고 들면 되게 오랜만에 만난 건데 어째 그때마다 크게 우는 모습을 보이게 되는 거 같아요.”

“아니야 그럴만한 일들이 생겼으니까 그런 거지. 안 그래도 걱정하면서 왔는데, 오히려 너무 밝은 모습이었으면 더 걱정했을 거야.”

“하하, 정말 선배를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사실 저 지수 납골당에 가끔 찾아가기는 했거든요. 선배네 가족들이랑 마주칠까 봐 일부러 기일은 피해서 갔지만. 대학 오고 나서는 한 번도 안 갔는데, 이렇게 선배가 같은 학교 같은 과에 있을 줄은 몰랐죠. 부모님은 잘 지내세요? 아, 혹시 불편하면 얘기 안 해도 돼요.”

“아냐 괜찮아. 부모님은 다 건강하셔. 여전히 일 때문에 엄청 바쁘긴 하시지. 혼자 여러 번 납골당에 왔었구나.”

“지수가 그렇게 되기 전까지 저희가 워낙 친했었잖아요. 그때는 정말 갑작스러운 일이어서 충격이 컸고 납골당에 찾아갈 엄두가 안 났는데, 고등학교 때쯤 되니까 지수가 보고 싶다는 마음이 커져서 뭐라도 달래 보려고 간 거죠.”

“나도 부모님도 그때는 온통 정신이 없었어. 지금은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많이 괜찮아졌지만. 우리도 그렇지만 중학생이 감당하기엔 큰 일이었을 텐데, 고생했겠다.”

“그렇죠, 그래도 지금은 지수를 떠올리면 고맙고 그립다는 느낌이 더 많이 들어요. 슬프지 않은 건 아니지만요. 선배는 좀 어때요?”

이 말에 나는 짧게 침묵하다가, 최대한 차분하게 대답했다. 애초에 나한테 감정 같은 건 없다는 듯이.

"그래도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까. 내가 일상에서 체감하는 건 집안이 많이 조용해졌다는 거 정도야. 동생이 죽은 후로 나랑 부모님은 대화를 거의 안 하게 됐어. 뭐 전에도 그다지 대화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집에서 제일 말 많고 친화력 좋던 사람이 사라지고 나서 집안이 아예 조용해졌지.”

"그래요? 제 기억에 원래 선배네 집은 조용했던 거 같은데."

"그나마 가족들 사이에 지수가 있으면 분위기가 활기차졌거든. 지수가 워낙 밝은 성격이었으니까."

이 말을 듣더니 한유진이 묘하게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영문을 모르는 이런 분위기 변화가 불편했다. 그래서 매우 이례적으로 내가 먼저 침묵을 깼다. 어린 시절 내 동생과 놀던 한유진이 어땠는지 기억을 끄집어내어 이야기하면서 분위기를 전환했다. 우리는 내가 가져간 간식을 조금 나눠먹었고, 적당히 시간을 보낸 후 나는 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다음날 한유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선배, 주고 싶은 물건이 있는데, 혹시 시간 될 때 병원에 다시 와줄 수 있어요? 물건만 건네줄 거라 잠깐이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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