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는 좀 못 합니다만.
어릴 때 달리기를 하면 이를 악물고 달렸던 것 같다.
이기려고한 것은 아니었고, 선생님이 체크하시는 타이머에서 나도 앞부분에 들어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딱 5순위.
선생님이 세시는 명 수가 딱 다섯명이었는데 그건 단거리든 장거리든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단거리도 우다다 마구 달렸고 장거리는 심장이 폭발할 것 처럼 쿵쾅거리고 가슴이 옥죄어 오며 내 다리가 내 다리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달리다가 앞으로 고꾸라지며 엔딩을 맞이했다.
남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다섯 손가락에 너무 들고 싶었다. 그리고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날 나는 신난다기 보다는 숨이 막혀 기절할 것 같은 상황에 바닥에 널부러졌다.
몸이 괜찮아지고 나서도 해냈다는 성취감은 없었다. 뭐를 위해 그렇게 그 다섯 손가락 안에 들고 싶었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이것 때문일까 싶은 것이 있다.
나는 당시 어려운 형편에 원하는 활동은 거의 하지 못하는 아이였고 말도 잘 못 했다. 소극적인 것은 아니었는데 사회를 이해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아이였어서 아이들도 나도 서로를 이해하는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결국 이해하거나 받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학교 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 뿐이었다. 모든지 열심히.
선생님의 다섯 손가락은 나의 열심을 나타내는 것이었고 나는 그 다섯 손가락으로 열심히 했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인정받고 받고 싶었던 것일까.
그것은 잘 모르겠다.
그 당시의 나는 '인정'보다 그 다섯 손가락에 들고싶은 마음이 더 컸다.
선생님이 뭘 해주길 바란 것은 아니었고 그냥 그 다섯 손가락에 들고싶을 뿐이었다.
한 번 손안에 들면 이후에는 잊혀지지만 그 다섯 손가락 안에 들고싶고 그리고 내가 기억하고싶었다.
그러다보니, 나는 달리기를 꽤 잘하는 편에 속했는데 항상 무리해서 달렸기 때문에 위험했고 잘한다고 보기 어려웠다.
지금까지의 인생을 사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어렵게 자라서 용이되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 처럼 보이는 세상의 많은 성공'신화'는 내게 좀처럼 오지 않았고, 나는 어렵게 자라서 어려움을 물려받아 사건사고 속에 끝나지 않는 굴레를 밟았다.
그럼에도 인생은 마라톤과 같으니 계속 달리란 말처럼 쉬지 않고 달려야 했다.
어린시절의 달리기와 닮은 달리기를 계속 해야 했다.
선생님의 손가락 같은 나만의 작은 목표를 눈 앞에 두고 목표에 다다르는 다리기는 어린시절처럼 쉽지 않았다.
숨이 차오르고 가슴이 쥐어짜져도 계속 달려야 했다.
고꾸라질 때까지 쉬지않고 달려야 했다.
그래야 겨우 작은 목표점 하나에 점을 찍고 '이 정도면 됐어. 잘 한 거야.'하고 내게 말 해줄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계속 반복되는 그 달리기를 아직도 하고 있어서일까.
이제는 달리기를 못한다.
너무 못한다.
하지만 나는 달리고 있다.
누군가 멈추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도 하고, 누군가 멈춰 쉬었다가 천천히 시작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도 하는데 나는 쉴 여유도 멈추지 않고 달릴 힘도 없어졌다.
그럼에도 달린다.
달리기는 좀 못합니다만, 저는 달립니다.
하고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모르겠는 말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매일 일을 한다.
매일 눈을 뜬다.
어쩌면 못한다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 나는 손가락 다섯개 안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내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어린 시절의 그 손가락 다섯개도 달린 이후에는 사라졌으니까. 너무 빨리 사라져서 내가 알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작은 희망을 가지고 나는 달린다.
매일 눈을 뜬다.
달리기는 못합니다만.
달립니다.
다시, 시작-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