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것이란 것.
나는 어릴 때부터 귀여운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귀여움은 아니었는데, 귀여운 인형이나 장난감이 조금 망가져 있는 것을 좋아했다.
막상 나는 망가트리지 못하고 인형들한테 생명이 있다고 생각해서 인형들이랑 대화도 하고, 내 옷도 입혀주면서 솜이 터지면 세상이 무너진 것 처럼 놀라곤 했는데.
망가진 인형을 보면 안쓰러워서 꼭 데리고 있었다.
어렸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인형이 꼭 나같았다.
물론, 어릴 때 어른들이 보고있는 사탄의 인형을 보고 너무 무서워서 동물 인형을 제외한 커다란 미미인형, 그러니까 부모님께서 꽤나 큰 마음을 먹고 사 주신 인형에게 나는 널 미워하지 않으니까 사람을 헤치면 안 된다고 당부하고, 그래도 무서워서 다른 곳에 인형을 보냈다.
보낼 때는 내옷을 입혀서 보내는 모순을 보였는데 그래도 무서워서 다른 곳에서 잘 살라고 인사도 했다.
망가진 것이 아니어서였을까.
데리고 있어야 한다는 어떤 감각이나 느낌을 가지진 못했다.
그렇게 나는 귀여운 것들, 그 중에서도 망가진 것들을 사랑하며, 그림도 항상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인형들을 그렸었는데 심리적 문제도 있었겠지만 그런 것들을 계속 좋아했다.
성인이 되고서야 망가지지 않은 인형을 선호하게 되었는데.
이건 아마도 돈을 직접 벌면서 깨끗하고 새것인 인형을 사야한다는 생각이 생겼기 때문이 아닌가싶다.
결국, 나는 여전히 귀여운 것, 그것 중에 어딘가 못나 보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왜 나 같은지는 여러가지 다양한 심리적, 경험적 요소들이 작용할텐데 그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란 생각을 한다.
무엇이 어찌되었든, 나의 귀여움이란 카테고리는 다른 사람에 비해 커다랗고, 수비 범위가 넓어서 쉽게 만족하지 못하는 것보다 좋고, 작은 생체기를 보고 기분 나빠만할 것이 아니라 어딘가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고 보는 긍정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누군가가 그것을 안쓰러히 여긴다면, 나는 내 사랑의 폭이 넓어서이니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당신의 다른 귀여워하는 포인트들도 어쩌면 사랑의 폭이 넓어서일지도 모른다.
사랑의 폭이 넓은 사람이어서 마음에 들이는 크기도 넓고 넓어서.
누구든 사랑할 수 있고.
누구든 안아줄 수 있다고.
모든 사람의 취향과 생각이 다르더라도 모든 사람이 사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래서라고.
그렇게 말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