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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말 May 07. 2017

소선 대악 대선 비정(12)

파도가 지나간 자리는 어지럽습니다. 그러나 해변이 어지럽지 않게 정돈되는 이유 또한 파도가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무뎌짐을 피해왔는데, 파도가 닿지 않는 구석이 없었나 봅니다. 파도가 가져온 것들은 결국 파도가 가져가 버렸습니다. 상실의 거대한 파도가 들이친지도 어느덧 반년이 되었습니다. 많다면 많다고 말할만한 시간입니다. 제법 시간이 흘렀음에도 때때로 내뱉는 한숨에 실린 당신에 관한 모든 감정을 이루 설명해내기가 아직은 어렵습니다.


구성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의 할 일을 잘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그들도 저와 같은지 아닌지 알 방법은 없습니다. 그저 그들을 믿고 있습니다.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되 쓰러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예전의 우리가 그러했듯이 그저 각자의 자리를 잘 지키는 것만으로도 어려운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요.


이루어내지 못한 결과물에 대해서 사람은 끊임없이 욕심을 부리고 아쉬워합니다. 어쩌면 그래도 그때가 좋았구나 싶은 마음이 들 때 부쩍 이러한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러나 당신에 관한 모든 것은 이제 이루어내지 못하는 것들 뿐입니다. 당신과 닿을 방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 거대한 상실에 맞서지 않아도 무력감은 피어오릅니다. 여기에도 별다른 해결책은 없습니다. 그저 일어난 일에 관한 관조밖에는 할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한숨은 많은 것을 설명하는 것만 같아서 자꾸 한숨이 나오게 됩니다. 짧은 한숨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서 편리합니다. 그래서 한숨을 자꾸만 쉬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마음 구석을 구구절절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이 최선이 되질 않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아직 많을 할 말을 망각하고선 한숨의 편리함에 기대는 것이 걱정이 되어 그렇습니다.


저는 잘 지내고 있는데, 때때로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미안합니다. 그리 맞닿아 즐겁게 지난 것은 아님에도 때로는 그립습니다. 그리움은 때때로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합니다. 그 짧거나 긴 파도를 피할 방법이 없어서 파도에 젖어들곤 합니다. 물론 파도를 피할 이유도 없지만요.


가끔 어느 한계선을 만나는 때가, 파도가 오는 때인 듯합니다. 최선이라 한들 결국 한 존재를 대신할 수는 없기에 그 한계점은 종종 발견됩니다. 대부분 나름의 해결점을 찾고, 혹자는 그것을 성장이라고는 합니다만. 그런 슬픈 성장을 마주할 때 또한 저는 한계점을 만나게 됩니다. 대신하고 싶지도 않지만 대신할 수 없음의 서글픔, 빈자리에 대한 공허함이 그 증거입니다.


당신이 만든 흔적을 애써 흉내 내지 만 어렵고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 이유는 당신 이어 서기 때문이지요. 그 누구도 당신을 대신할 수 없는 것만큼, 그래서 그 흔적 또한 마찬가지가 됩니다. 큰 아쉬움과 그리움이 먹먹한 밤입니다. 잘 지내보겠습니다. 당신을 위해 많은 것을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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