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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나는
예전의 나보다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다.
지금 이 순간의 나는
나라는 존재 자체로 그냥 충분하다.
나는 한때 보이지 않는 빈틈을 두려워했다.
비어 있는 자리를 무언가로 채우지 않으면
내 삶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빈틈이 보이지 않게 끝없이 채웠다.
사람으로,
일로,
물건들로.
그러다 문득 내 안에서 나라는 존재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마주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렇게까지 채우려 했던 걸까.
그렇게 채우기만을 고집하던 삶에서
과연 나는 행복했을까.
그 해답을 찾아가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다지 드라마틱하고
거창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사람들 사는 것처럼 하루를 살아가다
어느 순간 나를 완전히 잃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조용히 끌어안는 일,
그것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빈틈 하나 없게 꾸역꾸역 채우기보다,
보내야 할 것들을 붙잡는 대신
그저 흘러가도록 놓아주는 용기.
그건 내게 가장 필요한 삶의 요소였다.
굳이, 정말 굳이 내 것이 아닌 것들을
붙잡고 있을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
내 것이 아닌 것들은
조용히 흘러가게 두면 된다.
그렇게 하나둘 떠나보내고 나니
남은 자리에는 온전히 나만 남았다.
다 놓아보니
내 삶 속에 비로소 내가 선명해진다.
내 삶의 주인공은 나뿐인데,
나의 삶에 무엇을, 누굴 대신 세우려 했을까...
내 안에서 나를 죽이는 건
정작 나 자신이었다.
버리지 못하고 끝없이 채우기만을
고집하던 삶 속에서 나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어느 순간 가득 차 있던 것들을
하나둘 비워가보니
오랜 세월 잃어버렸던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버린다는 것,
그러나 비운다는 것은
잃는 일이 아니라
나를 되찾는 일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채워지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어 있는 지금이
가장 나다운 모습임을 알아가는 중이다.
나는 여전히 완전한 내가 아니다.
완전하지 않으면 또 어떠한가.
지난 것들을 비우지 못한 채
어떻게 새로운 시작을 바랄 수 있을까.
회복은 채움이 아니라
비움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나는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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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내 삶 안에 들여놓느라
정작 나 자신을 뒤로 미뤄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정하고 나서야
비로소 쓸 수 있었던 고백입니다.
우리는 종종 비워진 자리를 불안해합니다.
하지만 그 비워진 자리에 남는 것은 결핍이 아니라
내가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지금의 나’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저도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더 채우지 않아도 괜찮다고,
지금의 모습 그대로도
충분히 잘 살아가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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