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감정을 다루는 방법
아무래도 나는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결정한 퇴사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퇴사와는 조금 다른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사는 사람과 사람 간의 이별이라는 점에서 퇴사 후 겪게 되는 감정의 문제들은 대체로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별에는 후폭풍이 있다고 하는데, 퇴사에 있어서도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순간은 퇴사하고 난 이후였다. 퇴사에 있어서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문제들을 먼저 다루다 보면 때때로 감정은 후순위가 되곤 한다. 나 또한 처음에는 나의 감정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억누르려고만 했다. 하지만 나의 마음과 감정을 충분히 돌보고 회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이 글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가 경험하고 느꼈던 퇴사의 감정들을 적어내려가 보려고 한다.
나에게는 첫 회사였고, 정말 즐겁고 재밌게 다녔던 회사였다. 그래서 처음 권고사직의 이슈를 들었을 때,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아마 대표님 포함 모든 직원들에게 받아들이기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중을 위해 지금 후회하지 않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대한 개인적인 감정은 가라앉히고 이성적으로 퇴사에 대한 결정을 내리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일단 억누르고 있었지만 감정들은 불쑥불쑥 나오곤 했다. 회사에 나와서 사람들과 있으면 원래 그랬듯이 하하허허 웃다가도, 회사 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우울하고 피로했다. 그래도 회사 밖을 나가기 전까지는 그럭저럭 감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제 회사를 안 나가니 "내가 정말 퇴사를 했구나"하는 생각이 머리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퇴사하고 며칠 동안은 감정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내가 무언가 하지 않으면 느끼게 될 무기력과 불안이 싫어서, 개인적으로 해야 할 것들을 생각하고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3~4일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나름 이것저것 목표를 세우고 계획도 짜고 나니 퇴사 생활에 차츰 익숙해지고, 또 잘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러면서 어느 정도 퇴사 후 불안했던 마음은 누그러질 수 있었다. 그렇게 약간의 안정감을 느끼기 시작하자, 그제야 마음 한편에 구겨져있던 감정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퇴사하고 일주일 후, 그동안 쌓여온 감정들이 터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퇴사의 아쉬움, 상황에 대한 서운함,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 등 복잡하게 얽혀있던 감정들이 마음속에서 터져 나왔다. 결국 감정은 누른다고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감정들에 길게 빠져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되, 지금의 감정을 솔직하게 마주하고 잘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감정을 다루는 데 있어서 개인적으로 효과적이었던 방법을 몇 가지 떠올려보면,
첫째, 감정을 물 흐르듯이 내버려둔다.
처음의 감정들은 날 것 그대로라서 머리로 이해할 수 없으며, 말로 설명할 수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감정들을 충분히 느끼도록 그냥 내버려두었다. 답답하면 시원하게 울기도 하고, 밖에 나가서 뛰기도 했다. 감정을 머리가 아닌 곧바로 몸으로 받아낸 것이 오히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잡념에도 빠지지 않게 했다.
둘째, 감정을 예쁘게 포장한다.
앞서 감정에 충분히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고 난 후 어느 정도 감정이 가라앉았을 때, 감정을 예쁘게 포장하려고 했다. 여기서 예쁘게 포장한다는 말은 감정을 억지로 꾸민다기보다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마무리 짓는 것'을 의미했다. 나에게 있어 긍정적인 방향으로 감정을 정리하는 것은 '나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감정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아쉬움과 서운함을 감사함으로, 불안과 초조함을 원동력과 긴장감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퇴사에 대한 아쉬움과 서운함, 그리움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나에게 과거의 시간들이 좋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나의 인생에서(특히나 회사생활에서) 또 하나의 좋은 경험을 남길 수 있었다는 것인데, 이는 매우 감사한 일이 아닐까?
일종의 자기 합리화일지도 모르나, 인간의 감정과 기억은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재구성된다고 생각한다. 리사 펠드먼 배럿은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책에서 사람은 스스로 감정을 구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만약 내가 퇴사의 감정들을 스스로 구성할 수 있다고 한다면, 나는 좋은 감정들로 마무리를 짓고 싶었다.
퇴사를 머리와 가슴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는 개인적으로 한 달 정도 걸린 것 같다. 그동안을 돌이켜 봤을 때, 퇴사는 생각보다 감정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었다. 그만큼 퇴사로 인해 쇠약해진 나의 감정을 충분히 들여다보고 잘 회복하는 것이 중요했다.
또한 과거에 맺었던 관계에 대한 감정들을 잘 정리해 놓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왜냐하면 과거에 대한 기억과 감정은 과거의 관계뿐만 아니라 앞으로 새롭게 맺게 되는 관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퇴사는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 바다.
글을 마무리하며
물론 여전히 퇴사에 대한 여러 가지 감정들이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감사함, 그리고 약간의 아쉬움만을 남긴 채, 앞으로를 위한 감정들로 채워나가보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