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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율 Jun 09. 2020

항상 좋은 딸이 될 순 없잖아

퇴사 소식에 대한 엄마의 반응


새로운 소식이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퇴사라는 나의 새로운 상태를 언제, 누구에게, 어떻게 공유해야 좋을까? 퇴사는 누군가에게 쉽사리 알리기 어려운 주제이다. 더군다나 나는 평소에도 ‘무소식이 희소식이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소식 공유에 무딘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사 소식을 알리지 않기에는 퇴사가 내 상태 변화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했다.


퇴사 소식을 전하는 데 있어서 가장 부담이 적었던 사람들은 가까운 친구들이었다. 이런 (힘든) 일이 닥쳤을 때 가까운 친구들 만큼 빨리 털어놓을 수 있는 집단이 또 없는 것 같다. 다음으로는 의도치 않게(?) 유튜브 채널에 퇴사 소식을 알리게 되었다. 코로나로 같이 퇴사하게 된 팀원 몇 명과 유튜브 채널 <퇴사자인더하우스>를 만들게 되었고, 그곳에서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퇴사 소식을 알리게 되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가족에게는 퇴사 후에야 뒤늦게 소식을 알리게 되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가족들에게 퇴사 소식을 알리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부모님께서 당연히 걱정하실 텐데 염려 끼쳐드리기도 너무 싫었고, 나 스스로가 못난 딸처럼 느껴져서 말을 꺼낼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권고사직의 이슈가 나온 후 3~4주가 지나고 나서야 부모님께 퇴사 소식을 알릴 수 있었다. (물론 내가 자취를 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부모님께 말할 수 있었던 타이밍은 여러 번 있었다. 그중 대부분은 엄마가 회사에 대한 안부를 물을 때였다.



# 1. 첫 번째 타이밍

나: 여보세요?
엄마: 응~ 뭐해?
나: 회사 갔다가 집에서 쉬지 뭐..
엄마: 요새 회사의 문제는 없고? 코로나로 뉴스에서 계속 난리인데...
나: (뜨끔) 응, 뭐 괜찮아~ 잘 다니고 있어!
엄마: 그래? 그럼 다행이고~ 잘자 딸~
나: 응.. 엄마도!

첫 번째 타이밍은 권고사직을 듣고 난 직후에 했던 엄마와의 통화였다. 이때는 아직 퇴사를 결정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나 스스로 매우 복잡한 시점이었다. 물론 여기서 부모님께 바로 상황을 말씀드리고 함께 의논했다면 속전속결이었겠지만... 나는 그동안 혼자서 고민하고 결정을 내리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일단은 좀 더 혼자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고 나서 말씀드리자!"라는 생각으로, 이 타이밍에서는 다소 의도적으로 말씀을 드리지 않았다.



# 2. 두 번째 타이밍

나: 여보세요?
엄마: 응, 딸~ 회사는 잘 다녀왔어?
나: 으응.. 그렇지 뭐...
엄마: 그래, 밥 잘 챙겨 먹고. 내일 회사 가려면 일찍 자야지. 빨리 자!
나: 으응... 알겠어.. 잘자 엄마.

두 번째 타이밍은 퇴사가 이미 정해진 상황에서 엄마와의 통화였다. 이때는 정말 말할까 말까 머릿속으로 몇십 번을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차마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는 않았다. 부모님께 걱정 끼쳐드리지 않을 말씀을 드리고 싶었으나, 어떠한 계획이나 멘트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좀 더 나의 결심과 계획을 준비하고 자신감 있게 말씀드리자!"라는 생각으로 이번에도 전화 통화는 끝이 났다.



# 3. 세 번째 타이밍

나: 여보세요.
엄마: 딸~ 저녁 먹었어? 회사는 잘 다녀왔고?
나: 응.. 먹었어. 엄마 근데 나 할 말 있어... 있잖아... 나 회사 그만뒀어.
엄마: 뭐?? 왜 갑자기 그만둬?
나: 회사 상황이 안 좋아져서 우리 팀이 없어졌어. 허허.. 그래서 그냥 나가기로 했어.
엄마: 어떡해.. 그래도 좀 남을 수 있으면 남아야 하는 거 아냐? 너 그래도 나이가 30인데..
나: 엄마는 몇 살이야?
엄마: 뭐?ㅋㅋ 쉰여섯 정도 됐나
나: 그럼 나는 엄마보다 한창 어리네~ㅎㅎ 나 아직 젊어 엄마~ 괜찮아~
엄마: 참나ㅋㅋ 모르겠다 나도.
나: 허허.. 끊어요.

세 번째 타이밍은 퇴사를 하고 2~3주가 지난 시점에서 한 엄마와의 통화였다. 이때는 이미 회사를 다니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를 다녀왔냐는 말에 '응'이라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결국 어설프게 퇴사 소식을 불게 되었다. 그리고는 엄마의 걱정 섞인 말에 "나 아직 젊어~"라고 뻔뻔하게 반응하며 발칙한 딸이 되고야 말았다.




결국 언제 말하나 이렇게 말하는 거였으면 진작에 말할 걸 그랬나 싶었다. 사실 두 번째 타이밍과 세 번째 타이밍 사이에 앞으로의 계획, 목표 등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나름 준비를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그런 것들이 쉽게 준비도 안 될뿐더러, 막상 엄마와 전화하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도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엄마에게 퇴사 소식을 이렇게 어처구니 없게 전달하고는 말았지만, 나름 ‘발칙한 딸'이 될 수 있는(?) 연단의 시간을 보내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동안 부모님께 항상 멋진 딸, 자랑스러운 딸, 좋은 딸이 되고 싶었고, 또 그에 대한 부담감을 마음 한 구석에 담아두고 살았다. 하지만 살다 보니 그게 참 쉽지 않음을 깨달았고, 특히나 이번 퇴사를 계기로 아주 많이 느꼈다. 이 기회에 나 스스로 '좋은 딸'에 대한 강박관념을 내려놓고 나니 마음이 한 결 편안해졌다.



"그래. 항상 좋은 딸이 될 순 없잖아..."


그렇게 나에게 작은 위로를 던져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부모님께 좋은 딸,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다. 물론 내가 소위 말하는 엄친딸이 될 수는 없을 테고, 또 그걸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묵묵히 실행해 나가면서 부모님께 '신뢰'를 드릴 수 있는 딸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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