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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a Choi 최다은 Jul 02. 2024

변화의 시작, 그 저항성에 대해

*오늘 글은 성경적 가치관에 근거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옛날에 어떤 농부의 밭에서 아주 큰 당근이 났다. 그러자 그는 그것을 왕에게 가져가 아뢰었다. "폐하, 제가 당근을 재배해 보았으나 이렇게 큰 것은 전무후무할 것이옵니다. 하여 폐하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제 마음의 표현으로 이것을 폐하깨 바치나이다. "농부의 본심을 알아차리고 감동한 왕은 돌아가려는 그에게 말했다. "잠깐! 그대는 실로 땅의 훌륭한 청지기로다. 그대의 밭 옆에 있는 내 땅을 하사하노니 거기에서도 농사하도록 하라" 깜짝 놀란 농부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한 귀족이 왕궁에서 이 대화를 엿들었다. '세상에! 당근 하나를 바치고 땅을 얻었으니 그보다 더한 것을 왕께 바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런 생각에 이 귀족은 이튿날 준수한 검은색 종마를 이끌고 왕 앞에 가서 부복하며 아뢰었다. "폐하, 제가 말을 사육해 보았으나 이렇게 실한 것은 전무후무하옵니다. 하여 폐하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제 마음의 표현으로 이것을 폐하께 바치나이다." 그러나 역시 그의 본심을 알아차린 왕은 말을 받고 고맙다고만 한 뒤 그를 그냥 돌려보냈다. 귀족이 어리둥절해하자 왕을 이렇게 말했다. "그 이유를 설명해 주겠다. 그 농부는 당근을 나에게 주었으나 그대는 말을 그대 자신에게 주었다.(주)"




두려움에서 비롯된 정직은 세상 악의 근본 원인인 인간의 지독한 이기심을 근절하지 못한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 중에 탕자의 비유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 말을 잘 들었던 큰 아들과, 말을 듣지 않고 탕자의 삶을 살았던 작은 아들. 결국 작은 아들이 아버지 앞에 돌아오는데 아버지는 과거에 대해 책망치 않고 무모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푼다. 이에 큰 아들이 화가 나서 따지는 이야기. 큰 아들은 억울하다는 것이다.


큰 아들이 오늘날 종교인이라고 말하는 도덕주의적 삶을 사는 사람, 작은 아들이 자기 중심성을 드러내는 종교를 등 진 사람. 예수님은 두 사람 모두 잃어버린 존재라는 것이고 삶의 길 모두 막다른 골목이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큰 아들 부류의 사람은 선행 자체가 즐겁거나 사람들을 사랑해서 선을 행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들이 양식과 옷을 베푸는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 종교적인 큰 아들 부류는 하나님의 복을 받아내는 것이고 세속적인 큰 아들의 부류는 덕스럽고 너그러운 존재로 자처하기 위해서이다. 결국 둘 다 자신을 위한 선행이다. 예수님은 '종교를 등진 사람들' 편도 아니지만 '종교적인 사람들' 편도 아니다. 어쩌면 종교적 도덕주의를 치명적인 영혼의 병으로 꼽으신 다는 것이다.



나는 큰 아들 같은 삶을 살고는 있지만 작은 아들의 마음을 품었던 사람이다. 겉으로는 매우 종교적인데 속으로는 나의 참 자아와 행복을 발견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사람이었고 여전히 그 모습이 '나'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교회 안에서 매우 종교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을 (마음속으로) 꽤나 판단하고 있는 모순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남편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몇 달 전까지는, 큰 아들이 작은 아들을 바라보는 눈으로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남편보다 내가 더 (타인의 시선에서) 도덕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를 공격하고 경멸하기도 했었다. 물론 그 또한 나를 그의 시선에서 동일한 잣대로 비난했다.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면서 동시에 증오하는 마음이 동등한 것뿐이다. 그도 나도 오랜 시간을 상처 주는 말로 가장 힘들게 한 장본인이 서로가 되었을 뿐이다.


그도 나도 모두 틀렸다. 서로가 자신이 옳다고 주장했던 강렬한 투쟁을 이제는 멈춰야 하지 않을까? 큰 아들 작은 아들 상관없이 모두 틀렸지만 모두 사랑받았던 것처럼..


그 변화의 시작, 저항이 너무나 크다.


자기 연민과 독선을 나도 그도 서로에게 퍼붓는 만큼 스스로에게 퍼붓고 있는 모양이다. 같은 크기만큼 강한 상대를 만나게 한 이유도 분명히 있을 텐데 서로에게 돌리던 손가락질을 멈추고 그분의 무모하고도 무한하고 무조건적인 사랑 앞으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 답은 딱 하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주) 팀 켈러의 탕부 하나님, 팀 켈러, 두란노, 2016.


Dana Choi, 최다은의 브런치북을 연재합니다.


월       [나도 궁금해 진짜 진짜 이야기]

화. 토  [일상 속 사유 그 반짝임]

수       [WEAR, 새로운 나를 입다]

목       [엄마도 노력할게!]

금       [읽고 쓰는 것은 나의 기쁨]

일       [사랑하는 나의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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