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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현 Oct 19. 2023

2023년 아르코 창작기금 선정작

크림브뤨레


 크림 브뤨레 

         

내 취향은 설탕을 태우는 것

철들지 말라고 내 머리에 설탕을 뿌리던 할머니를 이해해요

무엇이든 절여야 오래 가질 수 있었던 그녀에겐 

위험한 주문이었죠  

   

서랍을 열면 튀어나오는 질문 때문에

불편한 옷을 입어야 했어요 

    

내 모든 생일을 혼돈에 빠뜨렸던 구름을 용서해도

불꽃을 터뜨리지 못하고 곤두박질치는 폭죽

할머니의 기적은 완성되지 못했어요 

    

소녀를 빛내던 흑발의 윤기가 

손가락을 빠져나와 어둑해진 골목을 배회하고 돌아온 날

텅 빈 배 속을 채우려고

빗물을 모으고 눈송이를 뭉쳤어요

      

무엇이든 이고 지고 다녀야 하는 게 어른이라며

긴 한숨을 내 어깨에 올려주고 석양을 넘어가는 노인의 등에선

수많은 별자리가 돋아났죠  

   

그리워서

창문 가득 햇살 멈춰 있으라고 설탕을 잔뜩 뿌렸어요   

  

할머니 유언장에서 캐러멜 냄새가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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