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현 Oct 19. 2023

2023년 아르코 창작기금 선정작

크림브뤨레


 크림 브뤨레 

         

내 취향은 설탕을 태우는 것

철들지 말라고 내 머리에 설탕을 뿌리던 할머니를 이해해요

무엇이든 절여야 오래 가질 수 있었던 그녀에겐 

위험한 주문이었죠  

   

서랍을 열면 튀어나오는 질문 때문에

불편한 옷을 입어야 했어요 

    

내 모든 생일을 혼돈에 빠뜨렸던 구름을 용서해도

불꽃을 터뜨리지 못하고 곤두박질치는 폭죽

할머니의 기적은 완성되지 못했어요 

    

소녀를 빛내던 흑발의 윤기가 

손가락을 빠져나와 어둑해진 골목을 배회하고 돌아온 날

텅 빈 배 속을 채우려고

빗물을 모으고 눈송이를 뭉쳤어요

      

무엇이든 이고 지고 다녀야 하는 게 어른이라며

긴 한숨을 내 어깨에 올려주고 석양을 넘어가는 노인의 등에선

수많은 별자리가 돋아났죠  

   

그리워서

창문 가득 햇살 멈춰 있으라고 설탕을 잔뜩 뿌렸어요   

  

할머니 유언장에서 캐러멜 냄새가 나요          


이전 01화 2023년 아르코 창작기금 선정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