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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글방 May 24. 2021

폭력당한 기억이 나를 성장시켰다

[단비글] 발자국 ⑥

2005년 프로레슬링은 우리나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자랑했다. 이는 초등학생에게도 해당 됐다. 언터테이커, 골드버그 같은 선수들은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동경의 대상이었다. 레슬링을 보고 따라하는 아이들이 많았으며 기술을 걸어 될 때는 꼭 기술명을 크게 외쳤다. 그러나 서열이 같은 친구들끼리 레슬링을 하지는 않았다. 그 아픈 기술에 걸리는 것은 서열이 낮은 쪽이었다. 나는 기술을 당하는 학생이었다. 이유는 약했기 때문이다.     

또래에 비해 성장이 느렸다. 위계질서라는 것이 정립된 초등학교 4학년 즈음부터 졸업할 때까지 반에서 먹이사슬 가장 아래에 있었다. 여자애들도 나를 곧잘 괴롭혔다. 학교폭력이라고 부를 만큼 거장하게 괴롭힘을 당한 것은 아니었지만 등에 발자국이 자국이 자주 찍혀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은 빨래를 하시던 어머니가 내 옷에 찍혀있는 발자국 모양의 출처를 물었다. 당시 태권도장에 다니고 있어 학교에서 친구들과 겨루기를 하다가 생겼다고 했다. 알량한 자존심이었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조금은 쪼그라든 상태로 살았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에 어려움이 있다거나 사회생활을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고등학교 때는 친구들이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 누군가 나의 물건을 허락 없이 빌리거나 사소한 문제의 책임을 나에게 떠미는 것 등의 불쾌한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순간에는 망설여지고 입을 떼기 어려웠다. 과거에 느낀 두려움이 깊숙한 곳에 남아있었다. 내가 손해를 보는 상황도 친구를 잃을까 양보했다. 누군가는 이를 보고 대인배라고 했지만 사실 싸우는 것이 두려워서 피한 것뿐이었다.     


대학교 진학 후에야 트라우마를 씻어낼 수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0년이 걸렸다. 10년 동안 아픈 기억과 참아내던 습관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양분이 됐다. 반강제로 사과하던 습관은 관용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누군가 내 물건을 쓰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아픔에 익숙해 진 것일 수 있지만 원래 아픈 수행 끝에 깨달음이 오는 것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에게 맞아본 경험은 폭력이 얼마나 가치 없는 것인지를 깨닫게 해줬다. 지금의 나는 당시 겪었던 아픔을 씻어냈고 폭력은 나를 꺾지 못했다. 또한 두려움을 알기에 누군가에게 두려움 따위의 기분 나쁜 감정을 주고 싶지 않다. 결과적으로 등 뒤의 발자국은 강한 사람이 되는 것에 도움이 됐다.     


아픈 기억이 나를 성장시킨 것처럼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기자가 되기로 결심했고 앞으로 수많은 위기가 찾아올 것이다. 그 때마다 피하지 않고 받아들일 생각이다. 한 편으로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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