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질문을 낳고, 또 질문이 질문을 낳고.
'말귀를 잘 알아 듣지 못하고 질문이 많지만, 인사를 예의 바르게 잘 함.'
우연히 훑어보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 적힌 문장이었다. 어릴 때 누구나 그러하듯, 나는 질문이 많았다.
하늘은 왜 하늘색이야? 무거운 물건을 어떻게 드는 거야? 나한테 한 말이 무슨 뜻이야?
문장 사이마다 의문사를 끼워 넣었고, 그 버릇은 종종 선생님들의 한숨을 샀다. 생활기록부에는 그 귀찮음이 적혀 있었다.
열두 해의 학창 시절과 네 해의 대학 생활이 끝날 무렵에도 나는 여전히 질문이 많았다.
나는 왜 교사가 되고 싶지? 시험을 왜 쳐야 하지? 나는 지금 뭘 하고 있지?
교사가 된 뒤에도, 대학원에서도, 나는 질문을 주렁주렁 달고 다녔다.
논문이란 건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나는 왜 공부를 하고 있는 걸까? 인간은 왜 사는 걸까?
본질은 같은데 껍질만 다른 질문들이 내 발목을 끊임없이 물고 늘어졌다.
그래서 나는 그토록 슬펐다. 대게 비슷한 본질의 질문들은 답을 알 수 없었기에. 늘어진 질문들은 물 먹은 솜처럼 축축하고 무거웠다.
나는 발버둥을 쳤다. 질문들이 발끝에서 떨어져 내가 훨훨 편안하게 걸을 수 있도록. 그러면 서툰 발버둥에 오히려 질문들이 더 엉키고 설켰다. 찐득한 늪에 빠진 것처럼 자꾸만 아래로, 아래로, 몸이 끌려 내려갔다.
발버둥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나는 질문들로 만들어진 늪을 보았다. 이 질문, 저 질문, 답을 얻지 못한 말들이 모여 늪이 되고, 늪이 내가 되었다. 질문들이 나를 만들고, 나는 질문 속에서 흘러갔다.
나는 늪 바깥에서 편안하게 걷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이 늪을 벗어나 내가 되고 싶었지만, 이 늪에 있는 것이 본래의 나였다. 이제 질문은 그만 하고 싶어. 나는 마지막으로 외쳤다.
"왜 이렇게 질문을 많이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