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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집에서 자면 되지!

그런 신박한 생각은 어디서 나오는 거니

by Dancing Pen Jan 08. 2025


미국에 여행 갔을 때의 일이다.

그곳에 남편의 친척 분이 계셔서(시아버님이 형제 분들 모두 미국에 거주 중이시다)

한 곳에서 하룻밤을, 다른 한 곳에서 이틀밤을 머물기로 했다.


모두들 다정하고 친절하셨지만

처음 뵙는 어른 분들과 함께이다 보니

절로 긴장이 되었다.


그곳을 떠나는 순간,

모두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쳐있었다.


그때 알았다.

나는 태생적으로 그런 상황에서 편하게 있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욕실도 쓰고 나오면서 대청소를 하고

사용한 침실도 최대한 깨끗하게 하고 나오고

어른들보다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새벽부터 기상했다.

그래야 마음이 편했다.

대신 몸은 힘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근처에 가면

만나서 인사를 드리고 식사 정도는 할지언정

자는 것은 따로 숙소를 잡는 쪽을 택했다.


--------


아이가 점점 커가면서

친구들과 슬립오버를 하고 싶다는 얘기를 부쩍 한다.


하아...


어쩌지...


이 역시 내 성격에 잘 맞지가 않는다.


우리 아이가 다른 집으로 가도

다른 아이가 우리 집으로 와도 마찬가지이다.


어지간해서는 허락을 안 해주다 보니

아이는 심술이 났다.

다른 엄마들은 잘만 보내주는데

왜 엄마는 그렇게 깐깐하게 구냐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다른 집으로 가면

그 집 가족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버릇없는 행동을 보이는 것은 아닌지

잘 안 씻어서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뭘 사서 보내면 좋을지. 등

하나부터 열까지 다 신경이 쓰인다.


우리 집으로 오면 더하다.

게임을 너무 오래 허락해 준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음식을 성의 없게 혹은 맛없는 것을 줬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잠자리가 불편한 것은 아닌지

하나부터 백까지 신경이 쓰인다.


--------


오늘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의 목소리가 밝다.


"오늘 즐거웠어? 재미있는 일이 있었어?"


"응, 오늘 좋았어! 엄마 나 어쩜 곧 슬립오버 할 것 같아!"


"응? 누구랑?"


"A랑 B랑.( 그 둘은 아이의 절친이다)"


"그래? 근데 A는 할머니랑 살아서 슬립오버는 하기 어렵다고 하지 않았어?"


"응, B도 자기 집은 누나가 있어서 힘들 거래."


"응? 그러면...?"


"내가 우리 집은 작아서 셋이 놀기 좁다고 했어."


"?? 그럼 잘 곳이 없는데 슬립오버를 어떻게 해?"


"내가 우리 할아버지 집이 요즘 비어있으니까 거기서 하면 어떨까? 하고 얘기했어."

(시아버님은 최근 형제분들을 만나러 미국에 가셔서 집이 비어있는 상태인 것은 맞다)


"할아버지 집은 학교에서 2시간이나 가야 하는데?"


"괜찮아! A는 지하철을 잘 타거든! 그리고 할아버지 집이 우리 집보다 넓잖아!"


"......"



하아...

저런 생각은 어떻게 떠오르는 걸까.


할아버지를 요즘 부쩍 가까이 느껴서일까.

아니면 슬립오버에 대한 열망이 너무 크다 보니 찾아낸 방법인 걸까.


뭐가 됐든 간에

나는 생각해 낼 수 없는 방법인 것은 확실하다.


그래, 아들아!

네가 직접 할아버지랑 이야기를 해보렴.

엄마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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