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중요한 것 VS 나에게 중요한 것
오랜만에 아이의 학습 기록(학교에서 제공하는 숙제 제출여부, 시험 결과 등이 등록되어있는 사이트)을 봤다.
작년에는 새로운 기록이 등록되면 알람이 자동으로 울렸는데
올해는 시스템이 바뀐 탓에 내가 필요할 때 접속해서 확인하면 되었다.
2달여 만인가...
접속을 했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시험을 보지 않았다고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이다.
시험을 안 보다니... 이상한데?
아이를 불러서 물어보았다.
"ㅇㅇ야~ 이거 뭔지 엄마한테 설명해 줄 수 있어?"
"뭐?"
"이거~ 이거 시험 아니야? 근데 이렇게 표시된 건 시험을 안 봤다는 뜻 아니야?"
"그렇지. 시험지를 제출 안 했다는 거지."
너무 태연하게 대답하는 아이의 말에 내가 되려 당황했다.
"..... 시험지를 제출안 하는 건 잘못된 거 아니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엄마는 이해가 안 되는데."
"엄마, 요즘 시험은 엄마가 보던 시험이랑 달라. 이건 종이에 관련된 내용을 정리해서 써내는 거였는데
내가 종이를 잃어버렸거든. 그래서 제출을 못했어. 수업시간에 앉아서 보는 시험이 아니라 기간 내에
내용을 정리해서 내는 거였다고."
"...... 그래도 엄마는 이해가 안 되는데. 종이를 잃어버렸으면 선생님께 말씀드려서 종이를 다시 받아서 제출을 하던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잃어버리면 '아, 종이를 잃어버렸네? 시험지가 없어졌으니까 이번 시험은 제출 못하겠다.' 이렇게
되는 거야? 엄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나중에 낼까 했는데 선생님이 기한이 지났다고 안된다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빵점인 거야?"
"응."
.......
"그럼 이건 뭐야? 이것도 제출이 안된 거 같은데."
"아, 이건 쪽지시험..이라고 해야 하나? 작은 수행평가 같은 건데, 못 끝내서 못 냈어."
"....... 왜 못 끝냈는데?"
"엄마, 내가 이때 얼마나 바빴는 줄 알아?"
.......
학원도 안 다니는 애가...
왜 바빴지?
이해가 안 되는데....
아이와 대화를 끝내고 착잡한 기분으로 앉아서 책을 읽으려고 해 봤다.
마음이 잡히지 않고 자꾸 아이 쪽으로 시선이 간다.
아이는 게임 사이트(?)에 접속해서 업데이트된 소식들을 살펴본다.
잠시 후 저녁을 먹으며 만화를 한 편 본다.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에 가서 러닝을 하고 오겠다며 나간다.
아이가 러닝을 하는 동안 구글, 크롬, 카카오톡의 1일 사용시간을 모두 사용했다는 알람이 온다.
운동을 하러 간 걸까? 핸드폰을 하러 간 걸까?
집에 와서 씻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다.
그리고 관심 있는 만화를 검색하기 시작한다.
10분....
20분....
기다리다 나의 인내는 한계에 다다른다.
"오늘 숙제 많다고 하지 않았니?"
"엄청 많지."
"근데 계속 만화만 보는 거 같은데? 만화 보는 게 숙제야?"
"거의 다 봤어."
"학교 끝나고 집에 와서부터 숙제가 많다고 하더니,
숙제는 안 하고
게임 사이트 갔다가 핸드폰 2 시간하고 만화보고
또 만화 찾아보고.... 숙제 안 많은가 본데? 그냥 이제 컴퓨터 끄고 자."
"싫은데"
"시험도 안 보는 애가 숙제에 뭘 아등바등하고 그래? 그냥 들어가서 잠이나 자. 만화 계속 보는 것도 보기 싫으니."
"잔소리로 내 시간 까먹지 마, 시간 아까우니까."
"... 만화 보는 시간은 안 아깝지만 엄마 잔소리 시간은 아깝다는 거구나. 그래. 알았다."
너무 짜증이 났다.
시험을 안 봤다는 걸 몰랐으면 지금처럼 화가 나지는 않았을까?
어떻게 시험을 안 보고도 저렇게 태연하지?
엄마가 시험 안본걸 알았는데 그 와 중에 어떻게 만화를 계속 볼 수가 있을까?
학생이 시험을 안 봤다는 것을, 수행 평가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엄마와
그럴 수도 있다는 건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자신의 인생에 많다는 건지, 나랑은 너무나 다른 아들,
마음을 가라앉힐 방법을 모르겠다.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아.....